한반도 평화 경제협력 기대한다면
비핵화 위해 내놓을 것들 성찰해야
북한 설득하려면 평화협정 공론화
주변국과 더불어 진지하게 고민을
지난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과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핵의 폐기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만들어졌다. '평양공동선언'과 북미 협상 재개라는 큰 성과를 낸 것이다. 그렇지만 못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이유는 제 것은 내놓지 않고 남보고만 내놓으라는 속된 욕심이 더 큰 결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원숭이를 잡기 위해 주둥이가 좁은 항아리 안에 야자 열매를 넣어둔다고 한다. 야자 열매를 손에 쥔 원숭이는 항아리에서 손을 빼지 못한 채 발버둥 치다가 사람들에게 잡히고 만다. 일단 한번 먹이를 쥔 이후에는 절대 내놓지 않는 원숭이의 생리를 이용한 사냥법인데, 원숭이뿐만 아니라 인간도 종종 양손에 떡을 쥐고서 다른 떡을 탐낸다.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라는 대한민국의 대의는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았고 이에 15만 평양 시민들이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1년 전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놀라운 진전이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33번이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지만, 당시 북한은 '서울 불바다'와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에 대한 보복'으로 대응했었다.
그런데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명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협상의 실마리를 풀어낸 것은 실로 큰 성과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 간의 경제 및 문화협력에서도 합의가 있었지만 이는 북미 협상의 진전과 맞물려 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미온적인 대응에 있다. 북한이 내놓은 떡을 받아 쥔 채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미국은 원숭이의 항아리에 묶여 있는 형국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애써 설득도 해 보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구체적인 대답 없이 계속 딴청만 부렸다. 이미 미군 유해를 송환받았고 이번에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쇄라는 큰 떡을 받고도 또 다른 떡을 찾는 꼴이다. 1994년의 북미 제네바합의에서 미국은 경수로 건설과 평화협정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종용했는데, 지금 미국은 뚜렷한 제안 없이 핵 사찰을 요구한다.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 한반도 평화를 추구한다지만 그 대가로 무엇을 내놓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서독은 통일을 위해 막대한 통일 비용을 지불했는데, 우리는 남북 관계의 개선이 초래할 이익만을 생각한다. 내 것을 내놓지 않으면서 평화도 유지하고 경제협력도 기대한다면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우리가 내놓을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우리가 주장하는 종전선언만으로는 북한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어렵고 불편하다고 해서 주변국들과 더불어 상호 구속력이 있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를 얼버무리고 넘어간다면 핵 협상을 진전시킬 수 없다. 나아가 대북 제재를 풀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에 대해서도 정밀하게 파악해야겠다.
초당적, 범국민적 협력의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겠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 국회 동행을 요청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에 거절당하면 당리당략으로 매도하면 판이 깨질 뿐이다. 내줄 것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때 비로소 협상이 성사된다. 공자도 강조했듯이 결과에 들뜨지 말고 먼저 어려운 일을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선난후획'(先難後獲)의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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