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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 나비/ 윤일현(1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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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 시인· 문학의 집
장하빈 시인·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나비의 삶은 곡선이다
장독대 옆에 앉아 있던 참새가
길 건너 전깃줄까지
직선으로 몇 번 왕복할 동안
나비는 갈지자 날갯짓으로
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돈다
아버지는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녔고
엄마는 뒷산 손바닥만 한 콩밭과
앞들 한 마지기 논 사이를
나비처럼 오가며 살았다
나비의 궤적을 곧게 펴
새가 오간 길 위에 펼쳐본다
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
새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았구나
엄마가 오갔던 그 길
굴곡의 멀고 긴 아픔이었구나


―계간 『발견』(2018년 가을호)

* * ** * ** * *

직선과 곡선의 삶의 대비가 선연하다. 직선은 날카롭고 엄숙하고 장엄하고 차갑고 빠른 느낌을 주는 데 반하여, 곡선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평화롭고 따뜻하고 느린 느낌을 준다. 장독대에서 전깃줄까지 오르내리는 참새의 날갯짓이 직선이라면, 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도는 나비의 날갯짓은 곡선이다. 대처로 나도는 아버지가 참새의 직선적 삶이라면, 뒷산 콩밭과 앞들 논 사이를 오가는 어머니는 나비의 곡선적 삶이다.

나비와 새의 궤적을 한데 겹쳐 보는 순간, "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 새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았구나" 하는 나비의 고단한 여정에 대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나비는 온전히 펼쳤다가 접는 데 한 생애가 다 걸린다는 책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그 한 페이지는 하늘의 넓이와 같고 그 내용은 신이 태초에 써 놓은 말씀이라고 한다. 따라서, 쪼들린 가계를 혼자서 꾸려온 어머니의 굴곡진 생애를 '나비'로 은유한 것은 어머니께 바치는 가장 위대한 헌사다.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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