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소비자 '눈 가리고 아웅'한 LG전자

"믿고 샀더니 제품은 오지 않고,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 배송만 더 늦어진 데요."

대구 한 백화점에 입점한 LG전자 매장에서 발생한 물품 대금 횡령 사건(본지 8월 29일 자, 9월 8일 자, 9월 14일 자 8면 보도) 피해자들은 "대기업마저 믿을 게 못 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혼수로 전자제품을 산 예비신랑 A(30) 씨의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A씨는 TV와 냉장고, 건조기, 세탁기, 청소기 등 1천132만원 상당의 전자제품을 구매했지만, 부지점장이 물품 대금을 횡령한 뒤 잠적해 발만 동동 구르던 상황이었다. 소중한 신혼살림이 도착하지 않는 심정은 얼마나 타들어 갈까.

A씨의 사연이 보도되자, 다른 피해자들의 제보도 잇따랐다. 지난 4월 결혼 15주년을 맞아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앞둔 B(50) 씨도 같은 매장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B씨는 '주문한 제품의 발주가 늦어져 배송이 늦어질 것 같으니 매장에 방문해달라'는 판매점의 통보를 받았고, 물품 대금을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B씨는 제품을 구입한 지 5개월 만에 구입을 취소했다.

지난 8월 같은 매장에서 혼수용품을 구입한 C(31·여) 씨도 마찬가지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C씨에게 '주문한 제품명이 변경돼 확인할 사항이 있으니 매장에 방문해달라'는 문자메시지가 온 것. 판매점 측은 사건이 발생한 후 보름이 지나서야 C씨에게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이처럼 피해자는 계속 나타나고 있었지만, LG전자 측은 피해 규모나 피해 보상 방식 등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일부 피해자들에겐 모두 23명이 물품 대금을 사기당했고, 피해액은 2억원 정도라고 설명했지만, 언론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피해 규모 등을 확인하고자 수차례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시도하고, 매장도 여러 차례 방문한 끝에야 어렵게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LG전자 제품의 판매, 유통을 맡고 있는 자회사인 하이프라자 측은 "최선을 다해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 피해 규모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더욱 황당했던 건 LG전자 본사의 대응 방식이었다. 십수 차례에 걸쳐 연락을 해도 받지 않던 LG전자 본사 측은 피해 규모의 축소 은폐 정황이 드러났다는 기사가 게재된 뒤 금요일 밤에야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LG전자 측은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만 강조할 뿐, 정확한 피해 금액이나 피해자 수, 현재 보상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도리어 해당 기사를 게재 취소해달라고 요구했다.

기자는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과 함께 업무 시간인 월요일에 다시 연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LG전자 관계자는 "월요일에 기사를 내리면 주말 내내 온라인에 노출된다"면서 "당장 기사를 내려달라"고 막무가내였다.

이후 보상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자 LG전자 측에 세 차례나 연락을 취했지만,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자신들이 할말만 하고 취재 요청은 또다시 거부한 셈이다.

소비자를 우롱한 물품 사기에, 감추기에만 급급한 대응 태도, 황당한 보도 취소 요구까지.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꼽히는 LG전자의 민낯을 고스란히 들여다본 씁쓸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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