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가산산성(사적 제216호)은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성이다. 성은 내성·중성·외성을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고 성 안에는 별장을 둬 항상 수호하게 했다. 총 둘레는 11.1㎞다.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이 성에 속하고 칠곡도호부도 이 산성 내에 있었다. 내성은 인조 18년(1640)에 관찰사 이명웅의 건의로 쌓았고 칠곡도호부가 이 안에 있었다. 중성은 영조 17년(1741)에 관찰사 정익하가 왕명을 받아 쌓은 것으로 방어를 위한 군사적 목적이 크다. 중요시설은 내성 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4개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해 유사시에 사용하게 했다. 외성은 숙종 26년(1700)에 왕명에 의해 쌓았다.
성은 외성 남문으로 들어가게 되고, 성의 주변에는 송림사를 비롯한 신라 때 절터가 많이 남아있다. 1960년의 집중 폭우로 문 위쪽의 무지개처럼 굽은 홍예문이 파손되고 성벽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그 밖에는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가산산성은 주변 지형·지세를 최대한 활용해 견고하고 다양한 방어 및 공격시설을 적재적소에 설치하고 있어 당시 성곽의 축성수법 및 시기적 변화양상, 군사 전략적 변화양상 등을 보여주는 주요한 학술자료로 가치가 높다.
또 성내에 칠곡도호부의 읍치가 설치된 것은 우리나라 산성 내 상시 거추 체제의 읍치 예가 드물다는 점에서 산성과 지방행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국군 및 미군과 북한군 간에 치열했던 가산전투를 치른 호국의 현장이기도 하다.
1971년 3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16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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