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건너가 꾸준히 시를 쓴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오후 7시 50분 별세했다.
시인의 작품을 편집·출간한 출판사 난다 김민정 대표는 4일 "허수경 시인이 한국시간 어제(3일) 저녁에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허수경 시인은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했으며, 이 사실을 지난 2월 김 대표에게 알린 뒤 자신의 작품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지난 8월에는 2003년 나온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15년 만에 새롭게 편집해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이 산문집 개정판에 서문으로 이렇게 썼다.
"내가 누군가를 '너'라고 부른다./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불안하고,/초조하고,/황홀하고,/외로운,/이 나비 같은 시간들.//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경남 진주 출신인 허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대표 시집으로는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과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등이 있다.
시인은 30년 가까이 여섯 권의 시집을 통해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빛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1992년에 낸 두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은 첫 시집의 세계를 이어받으면서도 좀 더 도회적인 변용을 보인다. 이 시집 표제작에서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같은 구절이 첫 시집의 연장이라면,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에서 웃음으로 울음을 대신하는 의성어 '킥킥'은 한국 시사(詩史)에 인상적으로 등재되었다.
2001년 제14회 동서문학상과 2016년 제6회 전숙희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올해 제15회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학과지성사에 따르면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힘든 투병을 해오던 시인의 고단한 몸은 뮌스터의 흙에 묻혀 가족과 이웃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고인은 시 외에 소설과 동화, 산문 등 다양한 글을 썼으며 독일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책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펴냈다.
동서문학상, 전숙희 문학상, 이육사 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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