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칼잡이.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시인'은 여린 감성을 떠오르게 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예민함에서 시가 나온다. '칼잡이'의 느낌은 냉혹함이다. 몸 전체를 살리려 팔 하나쯤은 서슴없이 자를 수 있는 결단력. 그래야 칼잡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칼잡이를 겸하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해 보인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처럼 모순으로 들린다.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 위원이 된 전원책 변호사 얘기다.
전 변호사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인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TV 논객으로 유명세를 탄 그는 변호사 이전에 '진짜' 시인이다. 정식 등단한 시인이라는 말이다. 한국문학신인상,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 두 차례나 시인 입문 과정을 거쳤다. '슬픔에 관한 견해', '바다도 비에 젖는다'는 감성이 물씬 풍기는 시집도 상재했다.
자유경제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보수주의자로서의 정체성 또한 분명하다.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칠판을 가득 채우는 해박한 지식에 압도당한다. 철저한 이론 무장과 좌중을 압도하는 입담, '버럭'을 마다하지 않는 전투력. 토론 프로에서 최우수 논객으로 뽑힌 배경이다.
전 변호사에 대해 언론들은 일제히 '칼잡이'라 부르고 있다. 한국당의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말일까. 한국당의 인적 쇄신, 직설적으로는 사람을 자르는 일을 해야 한다는 주문일 것이다.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영입 말이 나왔을 때 단칼에 거절했던 전 변호사였다. "소나 키우겠다"고 했다던가.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등이 삼고초려를 넘어 십고초려 끝에 영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칼잡이'론에 대한 당내의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전 변호사는 자신이 소 잡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로 짐짓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에게 칼을 쥐여준 사람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인적쇄신에 전권을 부여한다고 한다. 손에 피를 묻히는 일에 앞장을 서달라는 것이다.
상황은 낙관을 불허한다. 평론가로서는 '단두대' 등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공천하던 시절에도 역풍은 거세게 불었다. 인적 청산은 말 그대로 정치인들의 정치 생명을 끊는 일이다. 중진들은 잠시 안식년을 가지라는 식의 안일한 설득은 코웃음을 부를 뿐이다. 김 비대위원장이나 전 변호사 모두 정치 아마추어이다. 노련한 정치꾼들의 되치기에 자칫 상처를 입고 물러나기 십상이다. 이른바 친박계, 친홍계 등의 저항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총선을 목전에 둔 시기도 아니다. 아직은 당내에 위기의식이 없다. 정부의 잘못에도 한두 번 변죽을 울릴 뿐 누구도 치열한 싸움을 하려 하지 않는다.
전 변호사 스스로 이를 모를 리 없다. "온실 속 화초, 영혼 없는 모범생, 열정 없는 책상물림만 가득했던 한국당의 인재 선발 기준을 송두리째 바꾸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칼을 쥐었으니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할 것"이라고도 한다. 칼을 쓰는 목적은 분명하다. 사람을 자르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자유한국당의 묵은 병을 수술함으로써 보수 정치 세력을 살리는 집도의가 되어야 한다. 지지 여부를 떠나 좌우 진영 한쪽의 몰락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렵겠지만 기왕 맡은 일이다. 한국당의 회생 계기를 만들 수 있었으면 싶다. 시인의 감수성으로 설득하고 칼잡이의 냉혹함으로 결단하면 될까. 그야말로 시인을 겸하는 칼잡이가 뜨거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두 번의 기적을 연출해야 할 때이다. 한국당 쇄신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미리 해두는 말인데, 한국당과 보수 세력의 현주소를 깨닫게만 해도 전원책 위원의 임무는 성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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