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도지사의 운동화, 그리고 권력이동

경북부 차장
경북부 차장

최근 경북도청 공무원 사이에서 간 큰 공무원 일화가 화제였다.

한 사무관(5급)이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아끼는 운동화를 구겨 신은 게 발단이 됐다. 지사와 함께 회식을 하던 공무원 A씨는 용무가 급한 나머지 신발장에 있던 운동화를 골라잡고는 화장실로 내달렸다.

하필, 그가 꺾어 신은 운동화는 도백의 것이었다. 경북도 공무원 노조위원장이 '도정을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는 의미에서 취임과 동시에 선물한 것. 더 하필, 화장실에는 이 지사가 먼저 와 볼일을 보고 있었다. 지사는 모른 체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끼는 운동화를 어느 간 큰 공무원이 구겨 신고 있더라"며 그 직원을 골려 줬다. 이후에도 여러 행사 때 이 얘기를 두고두고 꺼냈다.

이후 도백의 운동화를 '테러'한 공무원이 누구냐는 이야기가 도청 회식 자리의 단골 메뉴가 됐고 '소통 도정'의 한 에피소드로 남아 있다.

앨빈 토플러는 1990년대 초 저서 '권력 이동'(Power shift)에서 "21세기의 권력은 힘 있는 자로부터 정보를 가진 자에게로 이동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권력 이동의 단계를 물리력→금력(돈)→지력(지식)→정보력 등으로 나눴다.

고인이 된 그가 지금 권력 이동을 집필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권력의 마지막 한 단계를 추가했을지 모른다. 매력(魅力)이다.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을 말한다. 돈도, 배운 것도, 정보마저 없어도 그냥 잘해주고, 친해지고, 따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반대로 아무리 잘나도 가까이하기 싫은 이가 있다. 매력을 끌어오지 않고선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이 지사는 '매력'을 무기로 하고 있는지 모른다. 도백 역시 "나하고 일하면 다 내 편이 된다"고 자주 말한다. 이 말에는 국정원, 3선 국회의원(정보위원장), 제1야당 최고위원, 그리고 현재 도지사의 자리보다 더욱 중요한 건 인간 '이철우'라는 의미가 담겼다.
부하 직원의 실수를 골려먹는 화젯거리로 만들어 공무원 간 소통을 이끌어내고, 실력 하나만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인사 팀장이 될 수 있으며 산하 공기관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매력이 있는 경북도. 일단 취임 100일간 이철우의 매력은 통했다.

하지만 하회탈의 미소만으로, 공정한 인사로만 지사의 매력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투자 매력을 느끼고, 외국 자본이 오고 싶어하는 '경제적' 매력까지 키워야 한다.

여기에 인정까지 더해야 한다. 특히 정과 매력이 넘치는 경북 만들기의 과정에서 불거지는 인적 쇄신에서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전임 지사 사람이라고 해서, 능력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실력만 있다면 실수로 운동화를 구겨 신은 것처럼 골려주면 그뿐이다.

일본의 300년 에도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의 늘그막인 70세를 넘어 2대 쇼군인 아들 히데타다를 조용히 불러 세운다. 그리고 원리 원칙의 쇼군에게 정의와 정직을 넘어서는 것이 인정이라고 가르친다.

조조는 경쟁자인 원소를 이긴 뒤 자기 수하들이 원소와 내통한 편지를 발견했지만 모든 것을 불문에 부쳤다. 군주론, 정략론, 전략론을 쓴 마키아벨리도 르네상스 희극의 걸작으로 통하는 '만드라골라'를 남겼다. 이 모든 게 인정 없이는 어려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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