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들은 21세기 안에 현재 지구상에서 통용되는 6천700여개 언어 중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정도만 남고 상당수는 소멸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도 2주에 하나꼴로 언어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면 한글은 어떨까. 한글 역시 이대로 방치한다면 '국가언어'에서 쇠락해 집에서나 쓰이는 '가정 언어'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은 한글날을 맞아 이런 '한글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저술됐다.
'시인들이 결딴낸 우리말'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아름다운 우리의 시(詩) 속에 일그러진 채 방치된 우리말을 찾아내 올바른 용례, 표기법으로 바로 잡고 있다.
지은이는 소개 글에서 "우리 정서와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우리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어(詩語)들 중 표현이 문맥에 맞지 않거나 어법에 맞지 않은 말들이 적지 않다"며 "우리말의 순기능을 이끌어야 할 시인들이 도리어 우리말을 더럽히고 오염된 낱말을 퍼트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고 있다.

◆150여 시인 작품 속에서 문법 오류 찾아내
이번 권오운 작가의 책은 '우리말 바로잡기' 제 2탄의 성격이다. 그는 이미 2006년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이란 책에서 우리 문학 작품에 사용된 잘못된 사례를 하나하나 찾아 우리말의 옳고 그름을 알려준 바 있다.
이번 책은 작가가 다시 한 번 '시'로 우리말에 대한 애정을 녹여낸 저술이다. 그는 5년여에 걸쳐, 시인들의 우리말 표현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더듬어 오류들을 찾아냈다.
지은이는 "내가 작가들의 우리말 실력을 폭로(?)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말글에 대한 제대로 된 모양새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마음 깊이 감동을 받는 시인들이나 명시들도 포함돼 있어 놀라움을 더한다. 작가든 시인이든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면 우리 말글쯤 만만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라는 것이다.

지은이의 꾸지람은 잘못 표기된 구체적 사례들에게 쏟아진다. 예를 들어 '산달 앞둔 임산부'라는 표현은 명백한 오류라는 것. '임산부'(妊産婦)는 '임부'(妊婦) 즉 '임신부'(妊娠婦)와 '산부'(産婦)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산달을 앞둔' 사람은 '임부' 또는 '임신부'이지, 임신부와 산부를 아울러 이르는 '임산부'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오용(誤用) 사례들이 너무 많아 시집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몇몇 발문만 살펴봐도 틀린 표현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적대로 책 속에 실린 150여 명의 시인들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오용사례에 놀라게 된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이런 많은 시인이 여전히 우리 말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단락마다 사라지는 우리말 상세히 정리
이 책에 실린 글 서른네 편 가운데 열아홉 편은 작가가 계간 '시인수첩'에 연재하던 것을 출간을 위해 정리한 것이고, 나머지는 이번에 새로 쓴 것들이다. 저자는 이 책을 위해 그동안 정리해두었던 글과 수백 권의 시집을 더 읽었다. 본문에 나오는 수많은 예문은 그 결과물이다.
저자는 잘못된 대표적 시적 표현으로 '민들레 홀씨'를 든다. 권정생의 '강아지 똥'에서 시작된 '민들레 홀씨'는 나희덕의 '학교다녀오겠습니다아', 송찬호의 '손거울', 이문재의 '민들레 압정', 정호승의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등에서 그대로 오류를 이어갔다. 꽃이 피었으면 그 것은 명백히 '씨앗'이지 '홀씨'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는 정체불명 어휘라는 것. 틀리게 사용된 것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표현된 단어들이 저자의 수사망에 걸려들어 이럴게 질책을 피해가지 못했다.
시인들이 상투적으로 읊어대던 '지구의 반대편'도 사실은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대한민국의 반대편은 있어도(한국의 대척점인 중남미 어디쯤 되겠지만) '지구의 반대편'은 없는 개념인 것이다.
사라지는 우리 말글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저자는 잘못 사용되는 우리 말글 대신 사용해야 하는 아름다운 우리글을 단락마다 정리했다. 어디에 이런 아름다운 우리말이 숨어 있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무 이름, 수량을 나타내는 단위, 올가미와 덫의 가지, 소나무의 한살이, 모내기부터 추수 타작에까지 이르는 우리말들이 정리돼 있고, 전통주, 주방용품, 전통놀이, 생활도구 이름, 밥, 그릇 이름이 등장한다. 이 외 소, 버선, 떡, 색깔, 논밭, 농기구, 집, 냄새, 고기잡이 등과 관련된 벌써 생소해진 우리 말글이 수록돼 있다.
저자의 이런 지적은 특히 이번 한글날을 맞아 울림을 더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언어란 관심을 기울이고 아끼는 만큼 아름다워지고 발전한다'며 '말이 생각의 그릇을 키우고 그 생각이 나라의 수준을 올리는 만큼 국민이 국어에 좀 더 귀 기울이고 바르게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359쪽, 1만3천원.
◆저자 권오운
1942년 강릉에서 태어나 196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1968년 학생잡지 '학원' 편집기자로 출발하여 'KBS 여성백과' 편집장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10년간 재직했다. 요즘은 주로 '우리말, 우리글' 분야 원고 집필에만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지르잡기'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우리말띄어쓰기 대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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