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로 만든 막걸리·청주 가양주 역할
집안·마을 공동체와 애환 함께해 와
현 정부 전통주 지원·세제 혜택 약속
잃어버린 가양주 문화의 회복 기대
올해는 폭염, 태풍 등으로 벼 작황이 다소 저조하다고 한다. 금년 농사는 그렇다 쳐도, 식량 자급자족 이후 적어도 쌀은 생산보다 여전히 소비 대책이 더 중요한 실정이다. 쌀은 백미로 별 가공 없이 주식이 되기도 하지만, 여러 유형의 가공식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쌀을 재료로 한 술, 이른바 전통주 역시 그 주요한 한 가지이다.
국내 술 소비에는 맥주나 소주가 양적으로나 판매액으로나 최고를 이룬다. 하나, 맥주는 엄밀히 보면 수입 주류에 해당하고, 소주는 대부분 희석식 주류라 진정한 의미의 양조 과정을 거친 술이라 보기 어렵다.
쌀로 만든 막걸리나 청주는 대대로 집안이나 마을 공동체에서 애환을 함께한 음식이다. 이렇게 집에서 만드는 술, 그러니까 가양주는 식품에 그치지 않고 가례 문화의 일부를 구성해 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술의 제조자격을 제한하고 세금을 매기면서 면허를 받은 기업만이 술을 제조 유통하고, 가양주를 만드는 곳이 전무해졌다. 일제의 주세령은 동기가 불순하고 부작용이 너무나 많았다.
현재 주세법의 연원이 된 일제의 전통주에 대한 정책 잔재를 비판하고 개선하여야 한다는 전문가나 현장의 목소리가 그래서 더 크다. 전통주는 하나의 문화이고, 주요 산업이기도 한데, 낡은 틀 속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잃었다는 것이다.
근대화, 공업화 과정에서 쌀이 귀하던 시절, 양곡관리법이나 주세법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하여 막걸리나 청주 등의 재료로 쌀을 쓸 수 없게 된 시기가 있었다. 주재료를 상실하게 된 전통주가 암흑기를 거치는 동안 맥주와 소주가 유행하며 위스키가 대접받았고, 전통 방식을 벗어난 예전의 막걸리는 재료나 첨가물이 불순해진 데다 싸고 고급스럽지 않은 술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의 입맛도 접하는 주류의 맛과 품격대로 자리 잡혀 갔다.
그나마 2010년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두 차례에 걸쳐 전통주 등의 산업발전기본계획이 제개정됨으로써 법제적, 정책적 기초가 최근에 마련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 정부가 들어설 때 쌀 가공산업 육성, 쌀을 재료로 한 막걸리 등 전통주에 대한 생산유통 지원과 세제 혜택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길게는 일제강점기부터, 가까이는 쌀을 재료로 한 전통주 제조 중단 시점부터의 단절기로 인하여 전통주의 명성과 품격이 당장 회복되지 않는 게 문제이다.
전통주는 식품이자 다양한 문화이며, 훌륭한 내수용, 수출용 상품이기도 하다. 위스키를 비롯하여 와인, 맥주, 백주, 사케 등 수입 주류가 범람하지만, 정작 전통주는 내수에서조차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갖가지 규제 속에서 주력 수출상품으로의 활약상도 아직은 미미하다. 이를 보완하고자 정부 계획에는 20, 30대에 전통주를 홍보하고 양조 관련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전문가를 키워내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으나, 실효성은 다소 의문이다.
최고의 식품은 집에서 정성스레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외식 산업의 성공 비결은 집 밖에서도 마치 가정에서와 같은 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맛과 질을 맞추는 데 있다. 전통주도 마찬가지다. 전통주의 근원은 앞서 본 것처럼 가양주이다. 집에서 손수 만든 술이야말로 가정 음식과 마찬가지로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맛난 술이다. 오늘날 집에서 직접 술을 담글 형편은 안 된다고 한다면, '전통주에 대한 양조 체험'을 확산함으로써 잃어버린 가양주 문화를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돌아보면, 가양주 문화의 회복이 시장에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높이는 밑거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주가 세계적 명품으로 세계인의 음주 문화와 품격을 높이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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