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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침묵의 어제 하루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조선시대 과거에서의 시험 부정과 비리는 다양했고 심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고 곪았는지 박지원 같은 학자는 과거가 치러지는 시험장을 '열에 아홉은 죽거나 다치는 그 위태로운 장소'라고 불렀다. 시험 부정행위도 '콧속이나 붓 대롱에 미리 준비한 종이 숨기기'에서 '답안지를 땅에 떨어뜨려 보여주기'와 심지어 '대리시험'에 이르기까지 숱했다.

과거 시험 당일의 당락으로 평생의 운명이 갈리기에 시험장에서의 부정은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시험 당일 시험장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일은 목숨을 걸 만했다.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좋은 장소 차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탓이다. 박지원이 이런 과거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한 까닭이다.

세월이 흘러 이런 조선시대 시험 부정 같은 일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더욱 촘촘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시험 부정의 유혹은 피할 수 없는 역사임이 틀림없다. 과거제도와 달리, 오늘날 대학 입학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여기에 맞게 자연스레 새로운 수법들이 생기는 현상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학 입시를 겨냥한 내신 조작 등이 그렇다.

서울 숙명여고에서 터진 시험지 유출 사건은 좋은 사례이다. 쌍둥이 자녀를 위해 학교 교무부장인 아버지는 자녀가 1학년에 다닐 때부터 미리 시험지를 빼냈으니 일찌감치 성적을 관리한 셈이다. 지금 제보되는 학교 현장에서의 다양한 부정행위들 역시 대학 입시에서의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한 일탈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런 일과 전혀 인연이 없는 학생들이 있다. 어제는 바로 이들이 실력을 발휘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다. 이들을 위해 어제 하루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특히 시험장 주변에서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 일이었다. 오후 1시 5분부터 40분까지 35분 동안은 전국에서 항공기 이착륙조차 금지되지 않았던가.

어제 시험장으로 향했던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 응원합니다. 수험생 뒷바라지에 지금까지 가슴 졸였던 학부모, 학교 교사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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