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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숨은 이야기 ② 관능과 욕망의 화신, 다윗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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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로, 다윗상, 브론즈, 높이 158cm, 1440년 경, 피렌체 국립 바르젤로미술관 소장

15세기 초,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 도나텔로(1383 혹은 1386~ 1466)는 후기 고딕 조각과는 다른 시각으로 인간의 신체를 탐구했다. 그는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비록 예수나 성인들일지라도 신의 모습이 아니라 파토스를 표출하는 인간의 몸으로 표현했다. 그가 조각한 인물상에는 인간 본연의 고귀함과 존엄성에 대한 확신과, 자유를 표방하는 인간중심주의사상이 녹아 있다.

도나텔로는 다윗상 두 점을 제작했다. 1409년에 완성된 195cm 높이의 대리석 다윗상은 전사라기보다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관조적인 느낌을 준다. 31년이 지나 제작된 청동 다윗상은 보다 더 관조적이며 섬세한 여성적인 모습이다. 여기서 다윗은 한쪽 다리에 몸무게를 싣고 다른 무릎을 앞으로 조금 기울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나텔로는 콘트라포스토를 좀 더 강조해 숙고하는 자세로 만들었다. 뒤태의 S자로 흐르는 곡선에서 더욱 여성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한낱 양치기 소년으로서 여호와의 힘을 얻어 블레셋 군대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단 한 번의 돌팔매질로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이라기에는 이 다윗상은 섬약해 보인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5m가 넘는 다윗상은 막 돌을 던지려는 찰나의 긴장감 속에서 꼿꼿이 서서 적장을 노려보는 자세인데 비해 158cm의 도나텔로의 다윗상은 고개를 숙인 채 사색에 잠긴 분위기를 연출한다.

온전한 누드보다 투구를 쓰고 부츠를 신은 다윗은 더 관능적이다. 선이 곱고 가녀린 다윗은 마치 자신의 모습에 반한 나르시스처럼 보인다. 도나텔로에게 감질나게 욕망을 자극하는 다윗은 자아도취에 빠진 영원한 욕망의 대상, 즉 예술작품의 은유인 것이다. 골리앗의 투구에서 다윗의 다리 뒤쪽을 따라 올라간 날개는 승리한 사람과 희생된 사람 사이에 흐르는 에로틱한 기류를 보여준다. 깃털은 15세기 피렌체에서 남근을 상징했다. 관람자의 마음을 묘한 에로티시즘으로 동요시키는 다윗상에서 미소년을 좋아한 도나텔로의 동성애 성향을 엿볼 수 있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는 부정적인 콤플렉스의 유형으로서 소년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에로틱한 특징이 이 조각상에서 나타난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자신을 거세할 것 같은 위협적인 아버지의 상인 것이다.

한쪽 발로 살짝 밟고 있는 잘린 골리앗의 머리에는 아직 생생하게 돌이 박혀 있다. 그런데 골반 부분에 기댄 손에도 돌멩이가 있다. 골리앗의 목숨을 앗은 무기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두 개의 돌멩이를 배치한 것이다. 새총 하나만으로 적장에 맞선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트린 후 그의 검을 빼어들고 단숨에 목을 베어버린다. 조각상의 한 손에 든 검은 힘없이 아래로 처져있다. 다윗은 전혀 승리에 도취돼 있지 않고 오히려 삶의 허망함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상념에 젖은 채 처연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이 조각상은 원래 피렌체 르네상스를 일으킨 후원자 메디치 가문의 궁 안뜰에 위치했다가 1495년, 정부청사 밖에 있는 베키오궁의 정원으로 옮겨졌다. 이는 15세기 후반 피렌체의 복합적인 격동상을 반영한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휘말린 패권싸움에서 피렌체는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도시를 통치하던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로젠초가 죽은 후 정치술에 미흡한 후계자들이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해 가문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무릅쓰고 거대한 적과 맞섰다는 점에서 도나텔로는 아담하지만 완벽한 형태의 이 다윗상을 빌려 당시 피렌체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빗대고 있다. 조각상 하단에는 다윗이 피렌체의 자유를 상징한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도나텔로는 다윗상에서 아름다운 얼굴과 섬세한 몸매로부터 흘러나오는 관능미와 함께, 승리를 쟁취한 후일의 이스라엘 왕의 이미지를 투영하였는데, 이후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프랑스의 왕비가 된 카트린을 배출함으로써 부활한 메디치 가문의 영광을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박소영(P.K Art & Media 대표)

박소영(P.K Art & Media 대표)
박소영(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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