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모습의 노령견이 내원하였다. 악취를 마다 않고 꼬옥 안으신 보호자의 표정에도 그늘이 가득했다. 삼돌이(16·스피츠)는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수컷이었다.
기력이 현저히 약화된 것도 문제지만, 가장 심각한 부분은 회음부 탈장이었다. 복강 내에 있어야 하는 장기가 항문 옆으로 탈장된 지 1년이 넘었고, 최근 일주일 전부터는 밥을 먹지도 않고 배변과 배뇨도 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삼돌이는 인근 동물병원에서 수술을 상담했지만 탈장의 정도가 심하고 나이와 건강이 나빠 수술을 미뤘다고 했다.
삼돌이의 엑스레이 검사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복강에 있어야 할 소장과 방광과 전립선이 항문 옆으로 탈장돼 엉덩이에 커다란 혹을 달고 다니는 상황이었으며, 반면에 아랫배는 유난히 가늘었다.
혈액검사와 초음파 검사 등이 이루어진 후 보호자에게 삼돌이의 상황을 정확히 알려줘야 했다. 급성신부전 등은 치료를 통해 회복될 여지가 있었지만, 탈장된 장기의 경우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는지, 배변과 배뇨가 조절될는지, 긴 시간의 수술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는지, 탈장부가 재발할는지 등 수술 예후에 대해 매우 회의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의 삼돌이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다. 어려운 수술이며 위험성과 재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에도 보호자는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됐다. 4명의 외과 수의사가 교대로 참여하며 장기들을 복원하고 방광과 전립선을 골반강 내로 고정시켰다. 비교적 무난히 진행되던 수술은 마지막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고령에다 일 년 이상 탈장이 지속되며 골반강을 감싸주는 근막이 소실되어 탈장을 메워 줄 근막 조직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항문 주변의 근육조직과 골반뼈의 골막들을 이중 삼중으로 봉합하며 수술을 마쳤다.
수술 후에도 삼돌이는 4일간 집중적인 약물 치료와 항문 주변에 압박 붕대를 교체하는 과정을 수 없이 반복했다. 의료진의 노력 못지않게 삼돌이 보호자도 아침저녁으로 삼돌이를 면회하며 물과 죽을 먹이고 삼돌이와 곁을 지켰다.
삼돌이의 건강이 서서히 회복돼 퇴원을 앞둔 시점에 또다시 위기가 닥쳤다. 입원 6일차 삼돌이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식사량이 늘면서 복압이 증가하고, 배변과 배뇨 시에 힘을 주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수술한 탈장 부위에 창액이 고이기 시작했다. 창액량이 많을수록 삼돌이는 급속히 쇠약해져 갔다.

동물병원의 모든 스태프들이 초 긴장하며 삼돌이를 보살폈고 집중적인 치료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다행히 4일간의 집중 치료 후에 수술 부위가 안정되며 삼돌이의 기력도 회복되어갔다.
동물을 치료하다 보면 의료적인 역할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배려가 병행되면 예후가 좋아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삼돌이의 경우 역시 치료 과정과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보호자가 방문해 음식을 먹이고 곁에서 대화하고 보듬어 주신 배려들이 16살 고령의 삼돌이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삼돌이는 퇴원 후에도 나날이 회춘하고 있으며, 매주 검진 차 내원하는 삼돌이를 이제는 은근히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한 생명을 입양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함께하는지를 삼돌이 가족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기 동물들이 많다. 동물이 나이 들거나 아플 경우 책임감이 결여된 주인이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경우가 특히나 많다.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삼돌이 가족들을 통해 잠시나마 느껴보았으면 한다.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 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예성강 방사능, 후쿠시마 '핵폐수' 초과하는 수치 검출... 허용기준치 이내 "문제 없다"
與 진성준 "집값 안 잡히면 '최후수단' 세금카드 검토"
[르포] 안동 도촌리 '李대통령 생가터'…"밭에 팻말뿐, 품격은 아직"
안철수 野 혁신위원장 "제가 메스 들겠다, 국힘 사망 직전 코마 상태"
이재명 정부, 한 달 동안 '한은 마통' 18조원 빌려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