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부러울 때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럽다. 노벨상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노벨상의 계절이 오면 우리나라 과학자가 혹시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가 연신 실망으로 바뀐다. 그때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프다.
얼마 전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다. 오사카시립과학관을 둘러보다 한쪽 구석에서 눈동자가 커졌다. 과학 전시물은 다 유치하고 오래되어서 별로 새로운 것이 없다. 그런데 그곳에 노벨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들의 사진과 연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 어린이들이 그 곳을 보며 '나도 커서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되어야지'라는 꿈을 가질 것을 생각하니 배가 아려 왔다. 이제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왜 아직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올해 노벨물리학상과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을 분석한 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올해 노벨물리학상과 레이저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집어 본 사람은 안다. 가는 머리카락을 집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그런데 이 머리카락보다 1,000 배나 더 작은 것을 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가 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광학 집게와 고출력 레이저를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미국 벨연구소의 아서 애슈킨 박사와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닉의 제라르 무루 교수 및 캐나다 워털루대의 도나 스트리클런드 교수를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애슈킨 박사는 아주 작은 입자나 바이러스를 집을 수 있는 '광학 집게'를 개발했다. 그리고 무루 교수와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산업분야와 의학분야에서 중요 기술로 사용되는 고출력 레이저 기술을 개발했다.

우선 애슈킨 박사가 개발한 광학 집게를 살펴보자.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작은 족집게로 집어서 옮기면 된다. 그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박테리아 한 마리는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당연히 족집게로 집어서 옮길 수 없다. 박테리아 입장에서 보면 족집게의 가장 뾰족한 끝 위의 넓이가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축구를 할 만큼 넓다. 그러니 훨씬 더 작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더 작고 예리한 집게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애슈킨 박사는 '광학 집게'라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바로 빛으로 집게를 만들어 박테리아를 집어서 옮기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빛을 이용해서 세포나 작은 입자를 옮길 수 있는 광학 집게가 만들어졌다.
빛을 마치 집게처럼 사용해서 물건을 집어서 옮기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정말 놀라운 발상이다. 그 원리는 이렇다. 우리는 보통 빛이 여러 파장으로 이루어진 파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빛은 파동의 성질 뿐만 아니라 입자의 성질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빛이 입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쉽다. 아주 작은 물체에 빛 입자를 보내면 그 빛 입자가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면서 운동량이 조금 변하는데 이것이 그 작은 물체에 전달되어 움직이도록 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방바닥에 작은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을 향해서 작은 빛 입자를 보내면 빛 입자가 작은 구슬에 부딪치고 튕겨 나오면서 그 구슬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광학 집게에서 사용하는 빛은 레이저 빛인데 살아있는 세포를 가만히 붙잡아 두기도 하고 빙빙 돌도록 만들기도 한다. 최근 이런 광학 집게를 이용하여 생물학 실험과 나노기술 관련 연구가 요즘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음으로 무루 교수와 스트리클런드 교수가 개발한 고출력 레이저 기술을 살펴보자.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면 종이에 불이 붙는다. 이처럼 빛을 모아서 출력을 세게 하면 종이뿐만 아니라 철판도 뚫을 수 있다. 단일 파장의 빛의 에너지를 세게 해서 만든 빛이 우리가 알고 있는 레이저다. 레이저는 많은 산업분야와 의료분야에서 중요한 기술로서 이용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고출력 레이저를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증폭 장치를 이용해서 레이저 펄스 세기를 크게 키우면 될 것 같지만 증폭 장치가 손상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무루 교수와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이 문제를 레이다에서 쓰는 기술을 응용해서 해결했다.
이들은 두 개의 격자를 이용해서 레이저 펄스를 파장의 성분에 따라 지연시켜 펄스의 시간폭을 늘렸다. 이후 증폭기로 빛의 세기를 크게 증폭시켰다. 그리고 다시 격자 두 개를 이용해서 시간폭을 압축해서 매우 세고 시간폭이 짧은 레이저 펄스를 만들었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요즘은 피코초(1조분의 1초) 레이저,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레이저, 아토초(100경분의 1초) 레이저 등이 개발되어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도 하고 다양한 재료를 아주 날카롭고 작게 절단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또한 라식과 같은 안과 수술에도 이용하고 있다.
◆통계로 보는 노벨상
노벨상 수상자는 20대에 박사 학위를 받고 30대 중후반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구를 시작해서 50대 초반에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의 정점을 찍는다고 스웨덴 노벨재단에서 발표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연구재단이 1901년부터 2017년까지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599명에 대한 전수 분석을 한 내용을 담은 '노벨과학상 종합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최근 10년 사이에 노벨상을 받은 수상자들은 평균 37.1세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연구를 시작해서 53.1세에 연구 정점에 도달하고 평균 67.7세에 노벨상을 받았다. 핵심 연구를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17.1년이 걸렸고 노벨상을 받기까지는 31.2년이 걸렸다. 그리고 20세기에는 30대 중반에 연구를 시작해서 40대에 연구를 완성하고 50대에 연구성과를 인정받아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보다 10년 정도 시간이 늦춰졌다. 전체 노벨상 수상의 평균 나이가 57세이지만 최근 10년 사이 수상자의 평균 나이는 67.7세로 올라갔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젊었을 때부터 논문을 많이 쓴 연구광들인데 평생 291.8편의 논문을 쓴다. 이 중에 노벨상 수상과 관련된 논문은 8편이며 이 논문 한 편당 인용수는 1226.2회나 된다. 특히 핵심 논문 31%는 수상자가 20~30대에 쓴 것이다.
'프리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울프상과 래스커상을 받은 후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많다. 울프상을 받은 과학자 네 명 중 한 명이 노벨상을 받았고 기초의학 부문에서 래스커상을 받은 과학자의 절반이 수 년 내 노벨상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리고 미국공학한림원에서 주는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상도 프리 노벨상에 포함된다. 나라별로 보면 미국이 263명으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 다음으로 영국(87명), 독일(70명), 프랑스(33명), 일본(22명) 등이다.
이처럼 진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연구 아이디어와 연구방법 및 연구결과뿐만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보면 노벨상을 받는 비결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봄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키우면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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