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맘(Mom) 불편한 사회]'누구 엄마' 꼬리표 떼고 싶지만…"일·가정 양립 힘든 대구"

대구 성평등 지수 전국 평균보다 떨어져…'슈퍼맘' 요구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26일 대구 중구 한 직장어린이집에서 엄마 손을 잡고 아이가 하원하고 있다. 성일권 sungig@msnet.co. kr
26일 대구 중구 한 직장어린이집에서 엄마 손을 잡고 아이가 하원하고 있다. 성일권 sungig@msnet.co. kr

지난 10년 간 그의 이름은 '가영이 엄마'였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예쁜 딸을 얻은 대신 '신지은'이라는 이름을 잃었다. 출산 전 중등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했던 신 씨는 출산과 함께 퇴사했고, 육아에만 몰두했다. 외벌이를 하는 남편에게 미안했던 신 씨는 2015년 가영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영이를 돌보려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학원 강사였던 경력은 살리기 어려웠고 아동복 판매 등 파트타임 계약직을 전전했다. 매일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한 뒤 일을 하고 돌아와 육아에 매달리는 일상이 반복됐다.

신 씨는"탄력근로제 기업에 취업하기 전까진 아이를 돌보고 취업 준비를 하며 가족들의 눈치를 봤다. 지금은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가영이 엄마' 대신 '지은 씨'라고 불리니 모처럼 사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엄마로 살기 쉽지 않은 시대다. 일자리가 많지 않은 대구에서 기혼 여성은 독박 육아와 저소득의 압박을 견디며 살아간다. 출산율과 결혼율이 매년 떨어지고, 경력 단절로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 "어머니로 살기에 대구 생활 여건 나빠"

대구는 기혼 여성들에게 생활 여건이 나쁜 편에 속한다. 대기업이 없고 공기업이나 양질의 중소기업 일자리도 찾기 어렵지만 맞벌이를 해야 주택자금과 각종 교육비, 생활비 등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기업에서는 장기간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쉽지 않고, 공동 육아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은 아직 낮은 편이다. 여성들이 일과 육아 부담을 모두 짊어지는 불합리한 상황이 반복되는 셈이다.

지난 2017년 결혼한 간호사 최모(30) 씨는 "서울 소재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연봉이 4천만원 정도였는데, 대구에 오니 경력을 모두 인정받고도 수입이 못미친다"며 "출산을 3~4년 뒤로 미뤘고, 아이도 한 명만 낳을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취업준비생 한모(29) 씨도 "남자친구는 결혼부터 하자고 성화지만, 충분한 소득에 출산·육아 휴직도 충분히 보장되는 직장을 먼저 구해야한다. 좋은 일자리를 찾아 타 지역으로 갈 지도 고민 중"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유독 여성에게만 혹독한 출산·육아에 대한 인식도 부담이다. 여성들은 취업 면접 때 "남자친구는 있느냐",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거냐, 출산하면 퇴사할 것이냐"는 등의 질문을 듣기 일쑤다. 개인의 삶을 업무와 연관짓는 구시대적 관행이 여전한 것이다. 특히 '인력은 대체 가능하다'고 여기는 조직 문화 속에서 출산에 따른 불이익은 주로 여성 근로자 몫이다.

최근 대구 한 중소기업에서 퇴사한 성모(27) 씨는 "출산 예정일 한달 전까지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을 만큼 헌신했다. 그럼에도 출산·육아 휴직을 신청하니 직장상사가 '너무 오래 쉬면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할 수도 있다. 가능하면 휴직 기간을 줄이라'고 했다. 회사에 쏟아 부은 노력을 인정받지 못한 기분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다"고 푸념했다.

◆ 대구 여성 '3포 세대' 증가 추세 뚜렷

이 같은 현실은 대구 여성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각종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 세대'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것. 가장 먼저 드러나는 건 혼인율이다. 대구시와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대구의 혼인 건수는 2015년 1만2천545건에서 2017년 1만1천392건으로 연평균 4.7%씩 감소했다.

성별로 보면 2017년 기준 여성 혼인율은 10.6%, 남성 혼인율은 10.8%였다. 이는 전국 7대 광역시 가운데 여성은 최하위, 남성은 6위에 해당된다. 전국의 성별 평균 혼인율은 여성 11.8%, 남성은 12.0%로 대구보다 각각 1%포인트 이상 웃돌았다.

자녀를 한 명만 낳거나, 자녀 없이 맞벌이를 하는 '딩크족'(DINK·Double Income, No Kids)' 부부도 늘고 있다. 대구의 합계출산율을 보면 2015년 1.22명에서 2016년 1.19명, 2017년 1.07명으로 해마다 감소했다. 같은 기간 출생아 수도 2015년 1만9천438명에서 2017년 1만5천946명으로 17.9% 줄었다. 대구시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0명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출산이나 결혼 후 직업적 전문성을 잃는 경력단절여성도 꾸준하다. 대구의 경력단절여성 수는 2015년 10만명에서 2016년과 2017년 각각 8만4천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국 7대 광역시 가운데 서울(35만1천명)과 인천(10만3천명), 부산(10만2천명)에 이어 4번째로 많다.

전문가는 이 같은 상황이 성평등 인식의 부재 탓이라고 지적한다. 일찌감치 맞벌이를 인정한 수도권 등과 달리 대구에서는 집안일과 양육을 여성 전유물로 여기는 구시대적 가치관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구의 성평등지수는 유독 낮은 편이다. 2015년 정부가 발표한 '지역별 성평등 수준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구 성평등 지수는 69.3점으로 전체 4등급 가운데 3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대구여성가족재단이 조사한 자료를 봐도 대구 남성 중 24%만이 "집안일을 부부가 공동 분담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화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정부나 대구시는 출생장려금이나 보육비용 등 한시적 육아 대책을 제공하는 데만 그치고, 기업도 인건비 절감 등 효율성만 중시하는 형편"이라며 "부모 근로자에 대한 배려와 협동의 가치를 선순위로 올리고, 시민원탁회의 등을 통해 시민과 기업이 원하는 일·가정 양립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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