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외이슈 풀이] <11> 노골화되는 '하나의 중국'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대만 동포에 고하는 글 발표 40주년 기념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양안 간 문제에 외부세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면서 대만과의 평화통일을 지향하지만, 필요하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옵션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양안(중국-대만) 문제는 누구도 간섭 마라."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은 물론, 미국을 염두에 둔 경고성 발언을 날렸다.

시 주석은 2일 오전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대만 동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발표 40주년을 맞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조국통일의 공동 분투를 추진하자"며 "대만은 중국 일부분으로 양안 동포는 같은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 한 민족으로 어떤 세력도 이를 바꿀 수는 없다"고 밝혔다.

특히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처음으로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도 밝혔다. 중국 정부가 대만 문제 백서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대만은 중국의 일부) 원칙에 포함되는 내용이지만 시 주석이 이를 공식석상에서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 주석의 연설은 해묵은 양안 문제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 대만과 미국의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는 데 대한 경고이자 견제로 볼 수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 연합뉴스

중국의 이런 행보에 대만도 "중국과 대만은 근본부터가 다르다"며 맞불을 놓았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양안 통일을 압박하는 중국에 대해 중국과 대만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차이 총통은 지난 1일 신년 담화를 통해 중국을 겨냥해 "쌍방의 생활습관과 정치제도 등이 근본적으로 상이하다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의 담화는 시 주석이 2일 중국과 대만에 관한 연설을 예고한 데 대응해 대만의 입장에 대해 확실히 선을 그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제55회 금마장(金馬獎)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받은 푸위(傅楡) 감독은 단상에서
지난해 11월 제55회 금마장(金馬獎)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받은 푸위(傅楡) 감독은 단상에서 "우리나라(대만)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개체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소원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중국공산당은 이를 빌미로 대만 영화 관계자들의 금마장 불참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양안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본토에서 일제를 몰아낸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벌였고 패한 국민당이 본토에서 쫓겨나 대만을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한동안은 대만이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를 지키며 국제 사회에서 정상 국가로의 지위를 지켰다. 하지만 잠룡(潛龍)이었던 중국이 국제사회로 용트림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중국은 지난 1971년 10월 UN 총회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았고 대만을 밀어내고 UN 상임이사국 자리를 꿰찼다.

중국 정부는 중국과 대만·홍콩·마카오가 분리될 수 없다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은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지만 실효 지배를 하지 않는 '미(未)수복 지역'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갖는 압도적인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 대만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다. '중국과 수교하려면 대만과는 관계를 끊고 오라'고 강요하는 방식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중국과 수교하고자 1970~90년대에 이미 대만과 관계를 끊었고 우리나라 역시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는 국교를 단절했다. 이 때문에 대만의 수교국은 갈수록 줄고 있으며 그만큼 국제사회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중국 해군은 지난해 4월 대만해협에서 실탄사격 훈련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중국 해군은 지난해 4월 대만해협에서 실탄사격 훈련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중국은 시 주석 취임 이후 대만에 대한 통일 야욕을 노골화하고 있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웨이펑허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 대화에서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열되면 중국은 미국이 남북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대가를 감수하고 조국 통일을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군은 최근 동중국해에서 대만 침공을 상정한 대규모 상륙 훈련을 하는 등 군사력을 통해 노골적으로 대만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일 시 주석의 연설도 이 같은 방침의 연장선에 있다.

대만은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중국과의 '대립과 협력'이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그렇지만 대만이 독립국이며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는 기본 전제는 바뀌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의 압력이 강해지면서 대만 내 독립을 요구하는 여론과 반중 감정도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대만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시위에 12만 명이 참석했다. 대만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진 것은 지난 2016년 민진당의 주석인 차이 총통이 집권한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지난해 11월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차이니스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으로 참가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대만의 국민투표가 있었다. 사진은 당시 타이베이에서 '대만 독립'을 강령으로 내건 민진당의 타이베이 시장후보 야오 웬 치 지지자들이 영문으로 '타이완 타이베이'라고 쓴 종이판을 든 모습. 연합뉴스

또한 지난해 11월에는 올림픽에 '대만'이란 정식 명칭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국민 투표를 벌이기도 했다. 대만은 1984년부터 '차이니스 타이베이'란 이름으로 올림픽에 참가해 왔다. 개'폐막식이나 시상식에서는 대만의 정식 '국기'인 '청천백일기' 대신 대만올림픽 조직위원회 깃발을 사용했고 국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따른 결과다.

그러나 '대만과 중국은 별개'라고 주장하는 대만 독립론자들은 이에 반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부터 올바른 이름을 사용하자는 '정명'(正名)운동을 펼쳐 국민투표에 부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급진적 변화를 거부하는 다수 유권자의 표심에 부딪혀 무산됐다. 동시에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는 대만 독립론자들을 지지기반으로 두는 집권 민진당이 참패했다. 대만 유권론자들의 표심은 '독립'보다는 '안정'을,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택했다.

트럼프 미국 정부가 정권 출범 후 처음으로 지난 2017년 6월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계획을 승인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정부가 정권 출범 후 처음으로 지난 2017년 6월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계획을 승인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연합뉴스

대만은 중국의 압박에 대한 돌파구로 미국과의 연대 강화를 선택했다. 차이 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지난 2016년 12월 전화로 그의 당선을 축하했다. 트럼프 정부의 참모들은 자주국으로서 대만을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미국의 대외 전략에서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아태·안보부차관보는 지난해 10월 미국·대만 방위산업회의 연설에서 "대만군은 유사시 중국을 격퇴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대만에 방위비를 늘리라고 요구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대만에 3억 3천만 달러(약 3천800억원) 규모의 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2017년에는 13억 달러(약 1조4천865억원) 상당의 무기 수출도 승인한 바 있다.

친(親)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정부가 중국의 군사적 압력에 맞서 독자적인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親)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정부가 중국의 군사적 압력에 맞서 독자적인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만을 포함하는 내용이 담긴 '아시아지원보장법안'에 공식 서명했다. 이 법안은 중국과 대만의 현 상황을 변화시키는 행위에 반대하며 양안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평화적 해결 방안을 지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황충옌(黃重諺) 대만 총통부 대변인은 "미국이 대만에 대한 안전보장을 재천명한 것이라며 대만과 미국의 관계 증진에 대한 지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양국의 연대 강화는 점점 노골화되는 중국의 압박에 맞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대만과 패권의 야망을 품은 중국의 기세를 꺾고 세계 1위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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