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하려면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공약 파기된 '대통령 광화문 집무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

현안 있으면 수시로 기자회견 열고

구체적 질문 응답으로 소통 나서야

지난 대선 당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조명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다. 번잡한 경호 등을 고려할 때 대통령 광화문 집무실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당선 후 사흘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대신 여민관 집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이전하기 전까지 여민관에서 업무를 볼 계획이라는 소식과 함께였다.

문 대통령이 1호 공약을 실제로 이행하겠다고 무리수를 둘까 걱정스러웠다. 공약 포기를 권하는(?) 칼럼을 쓰고 싶었다. 내심 생각한 제목은 이랬다.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합니다." 여민관은 참여정부 시절 완공된 비서실 건물이다. '광화문 대통령' 공약의 취지는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광화문 대통령'에 주목한 것은 소통하는 대통령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구중궁궐과 같은 청와대를 나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 늘 소통하겠다"는 문 후보 자신의 말 속에 답이 들어 있다.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은 거대한 공간에 홀로 떨어진 섬 같은 존재이다. 참모들도 쉽게 만나기 어렵다. 청와대 본관 집무실은 그래서 단순한 공간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비서진과도 그런데 하물며 국민의 목소리가 들리겠는가라는 불통의 상징이었다. 대통령과 비서들이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의한다면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하다.

광화문 대통령 공약 파기 자체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따져보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과연 문 대통령이 '소통하는 대통령'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며칠 전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다. 예년처럼 거창한 '행사'로 치러졌다. 취임 3년 차를 맞는 문 대통령이지만 제대로 된 기자회견은 세 번째이다. 말 그대로 연례행사이다. 수시로 국민을 만나겠다는 다짐과는 거리가 멀다. "소통 강화라는 이념적 취지에서"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만들었다는 설명도 무색하다.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회의 등에서의 대통령 '말씀'은 소통이 아니다. 과거 익숙하게 보아온 일방통행이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과는 밀접한 소통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현안에서 대통령과 비서진의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문제가 드러난다. 국민 여론이나 인식과 거리가 먼 확증편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위기론을 야당과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으로 일축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하려면 그래서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수시로 기자들을 만나야 한다. 매월, 아니면 현안이 있을 때 수시로 회견을 해야 한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과 영상을 준비하는 등 '행사'로 치르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항상 대기하는 청와대 기자실에 서면 된다. 특별한 격식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현안을 몰아서 하다 보니 문답이 수박 겉 핥기로 그치는 것이 사실이다. 특정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 추가로 이어지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어야 한다. 국내 언론과 인터뷰도 자주 해야 한다.

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외신과 인터뷰는 수시로 있었지만 국내 언론과 제대로 된 인터뷰가 한 번도 없었다.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언론뿐 아니라 야당 의원들과도 만날 필요가 있다. 상임위별로 여야 의원들을 함께 초청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근 문 대통령은 부쩍 소통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장관들도 유튜브에 출연하라는 독려도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면 총리, 장관 등이 다투어 나서지 않겠는가. 그럴 때 국민들은 비로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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