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나비를 부르지 못할망정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여보, 우리 집 마당에 나비를 불러들이겠소!" "아니, 당신이 무슨 요술쟁이요. 글쎄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2016년 가을, 칠곡 왜관의 정재우 한의사는 아내에게 약속했다. 농약 사용과 환경 변화로 농촌의 나비와 곤충도 사라지는 판인데, 느닷없이 자기 집 마당에 나비를 불러들이겠다는 남편의 생뚱맞은 약속과 장담에 아내의 미덥지 못한 반응은 마땅히 그럴 만했다.

그리고 2017년 여름에 이어 2018년 같은 즈음, 그의 마당에는 '꼬리명주나비' 무리들이 훨훨 날아다니는 동화가 이어졌다. 남편은 약속을 지켰고, 아내에게 한 장담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보기 드문 꼬리명주나비는 그렇게 칠곡의 매원마을 손님이 되었다.

사실 정재우 한의사는 꼼꼼했다. 무엇보다 귀한 존재의 나비를 모시는(?) 준비부터 철저했다. 꼬리명주나비가 먹이로 하는 식물 즉 식초(食草) 공부에 나섰다. 이어 오랜 발품 끝에 군위 부계 한밤마을 울타리 여기저기에서 자라던 '쥐방울덩굴'이 그 식초임을 알고 구해 집 담장에 심었다.

그의 정성에 쥐방울덩굴은 담장 아래 움을 텄고 어느 순간, 잎에는 무슨 알들로 소복했다. 곧 애벌레가 되더니 마침내 검은 갈색 무늬에 노란띠를 두른 꼬리명주나비들이 마당과 담장을 넘나들며 춤쳤다. 1년 넘는 그의 간절한 나비 초청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논리는 분명했다. 먼저 나비를 부를 터부터 닦고 나비가 머물 뭇 조건을 갖추는 일이었다. 그랬더니 쥐방울덩굴은 특유의 내뿜는 냄새로 나비를 불렀고, 어디선가 찾아온 나비는 여러 판단 끝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식초로 배를 불리며 새 삶터로 삼은 셈이다.

아내와 한 약속을 지키고 자신이 뿌리내린 삶터까지 가꾸고자 하는 그의 행동을 떠올린 것은 최근 대구은행장 사태가 생각나서다. DGB금융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의 분리에 대한 대구시민과의 약속조차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되레 지역사회에 갈등만 일으키는,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두 인물의 행태가 그렇다. 대구은행을 찾는 나비를 길러도 아쉬울 터인데 그러기는커녕 내쫓을 그런 모습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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