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곤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47·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장)는 매일신문과 약속한 인터뷰에 뒤늦게 나타났다. 수술 때 쓴 마스크는 아직 벗지도 못했다. 가뿐 숨을 내쉬며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2013년부터 고위험 산모만 전담한 이후, 거의 모든 약속 때마다 되풀이 하는 해프닝이 이날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사실 그날 배 교수의 수술 스케줄은 오전 1건뿐이었다. 그래서 언론 인터뷰도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생사(生死) 를 오가는 산모가 둘이나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아무리 약속이 중요하지만, 사람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솔직히 시간을 정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배 교수에게 의탁하는 고위험 산모는 조산, 전치태반(태반이 산도를 가로막음), 자궁경관무력증(양막이 터져 유산 가능성이 높음), 임신성 당뇨, 고혈압, 노산 등 다양하다. 유산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황에서도 끝가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태아를 살려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21주 된 생태아(쌍둥이)가 양막이 터지고 염증이 심각한 상태로 온 것을 집중치료를 통해 30주 만에 건강하게 출산했다.(각각 1천300g, 1천400g)
"고해상도 초음파, 분만실 내 산모를 위한 중환자실, 전용 인큐베이터, 24시간 집중 케어 등 시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진의 팀워크입니다. 호흡이 착착 맞는 120여 명 의료진 없다면 생사를 다투는 산모를 치료하겠다고 선뜻 받아들이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힘듭니다."
배 교수는 동산병원이 2014년 강원대병원, 충남대병원과 함께 전국 최초로 고위험 산모 전담센터를 시범운영하게 된 이유를 "고위험 산모가 언제든지 가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고위험 산모 만을 전문적으로 전담해서 보살피는 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위험 산모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이동 중에 사망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았던 탓이다.
산모의 건강은 태아의 건강, 그리고 신생아의 향후 삶과 직결된다. 합병증을 가진 산모와 고위험 신생아의 건강은 결코 산부인과 만의 과제가 아닌 것이다. 때문에 내과, 외과, 중환자의학, 신경과 등과의 협업을 비롯해 소아외과, 소아심장과, 소아비뇨기과, 소아안과, 소아성형외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신경과, 소아재활의과 등의 도움 역시 필수적이다.
"단순히 생명을 살리는 것을 넘어, 신생아의 향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수준 높은 소아 전문 의료진의 도움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별명이 '잔소리 대마왕'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힘들어 죽을 지경인 고위험 산모를 붙들고 앉아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 잔소리를 해대어 붙은 별명입니다. 산모와 태아, 신생아의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제가 어떻게 잔소리를 멈출 수 있겠습니까?"
배 교수는 사생활 없는 일과가 반복되지만 그래도 요즘은 살맛이 난다고 했다. 의대 졸업생 모두가 기피하는 일이지만, 뒤를 따르겠다는 후배들이 여럿 있다는 자랑이다. "김천·상주를 포함해 전국 55개 시·군이 분만취약지역인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이 낳는데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후배들이 고마운 한편, 정부의 과감한 정책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력>
▷충주성남초·구미금오중·대구능인고 졸업 ▷계명대 의과대학 졸업 ▷계명대 동산병원 전공의 ▷계명대 동산병원 산부인과 연구강사·임상전임강사·조교수 ▷미국 캔자스대 메디컬센터 고위험임신센터 연수 ▷계명대 동산병원 부교수 ▷계명대 산모-태아집중치료센터장 및 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장(현) ▷대한모체태아의학회 고위험산모센터위원회 위원장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학술위원 ▷2016~2018 대한산부인과학회 전문의시험 출제위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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