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신 화상에 고통받는 김태석 씨 "다시 일어나고 싶어"

빚보증 잘못서 가족 뿔뿔이 흩어진 뒤 17년간 홀로 건설현장 떠돌아

대구 남구의 한 여관방에서 만난 김태석(60·가명) 씨는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라면과 양은냄비, 가스버너가 그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그는 포크를 집어들고 라면을 힘겹게 입에 넣었다. 화상을 입고 쪼그라든 오른쪽 팔은 얼마 전부터 굳기 시작해 젓가락질이 불가능해 진 탓이다.

과거 부인과 콩나물선지국밥을 팔면서 딸을 키우던 그는 IMF 외환 위기 이후 전 재산을 날리고 혼자 떠도는 몸이 됐다. 잘못 선 빚보증 탓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전국을 전전하며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술에 찌들어 살던 그는 어느날 원룸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신 3도 화상을 입게 됐다. 녹아버린 두피는 아직 두개골이 드러나 있어 수술치료가 급하지만 당장 오갈 곳도 없는 그의 형편에 치료비는 엄두조차 낼 수 없다.

◆ 화마가 부른 참극, 전신에 번진 화상 후유증

김씨는 2017년 1월 원룸 방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4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있었다. 깨어난 것을 안도하기도 잠시, 화상 후유증은 심각했다. 온몸이 화상으로 검게 탄 채 쪼그라들었다. 근육과 신경까지 손상을 입은 탓에 오른쪽 다리와 팔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치료가 시급한 부위는 두개골이 드러난 머리다. 녹아버린 두피를 재생하려면 피하지방과 근육 등을 가져와 이식하는 피판수술이 절실하다.

화재원인은 담뱃불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당시 다시는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고 고개를 떨궜다. 오랜시간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떠돈 탓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매일 밤 믿었던 친구에게 보증을 섰다 배신당한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었고, 가족과의 행복해선 시간이 떠올라 술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17년 간 전국을 떠돌며 이어진 막노동에 김씨의 몸도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고혈압과 당뇨, 지방간, 신장염을 앓는 가운데 알코올성 우울증도 심했다. 그는 "방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가기 싫었다. 이대로 끝내고 싶었던 마음 뿐이었다"며 "연기를 많이 마셔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보니 4개월이 흐른 뒤였다"고 했다.

◆ 연락 끊긴 가족, 당장 거처할 곳도 없어 치료는 요원

유일하게 김씨를 찾아와 간호하던 딸과도 2017년을 끝으로 연락이 끊긴 상황이다. 수년전 가족관계증명서 속에서 발견한 딸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 극적으로 만났지만 끝내 밀린 병원비와 막대한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종적을 감췄다.

김씨는 "사위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고 들었다"며"전화번호도 바꾸고 주소시도 바꿔 편지를 보내도 반송된다"고 말했다. 표정변화 없이 담담하던 그는 끝내 딸 이야기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자활의지를 북돋워 준 것은 다름 아닌 병원 직원들이었다. 김씨는 "어느날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병원 사무국장이 말을 걸어왔었다"며 "그땐 너무 절망적이라 '살아서 뭐하겠느냐'고 응수했었는데, 이후로 1년 넘게 병원에 있으면서 직원들이 '치료비 걱정말고 힘 내라'고 참 많은 힘을 줬다"고 했다. 김씨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누구나 용기와 위안을 주더라"며 "염치없지만 그 애정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젠 정말 삶의 끈을 다시 붙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2주 전 병원퇴원 후 현재 구청에서 잡아준 여관에서 생활중이다. 백아인 남구청 주민생활과 주무관은 "김 씨가 당장 살 곳이 없어 LH매입빌라 지원에 신청했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선정된다고 해도 보증금 300만 원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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