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당(黨)과 파(派), 또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이놈아! 너는 한국 북부 사람이 아니다. 너는 한국 남부 사람이 아니다. 너는 한국인이다. 알아듣겠느냐! 우리가 분열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우리를 정복했다. 최가 북부 출신이라서 네가 그를 증오한다면, 네가 남부 출신이라서 최가 너를 증오한다면, 우리 한국인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는 항상 남의 나라 노예가 될 것이다.'

독립운동가 현 순의 아들 준섭이 1919년 3·1운동 뒤 상해에 머물며 한국인 자녀를 위한 인성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상해 아이들의 '망국노야!'란 놀림 속에 다닌 학교의 북부(평양) 출신 최 학생과 싸우다 들켜 통곡하며 회초리를 든 선생의 절절한 하소연이다.

현준섭은 책상 위에 쓰러져 흐느껴 울던 선생님이 가르쳐 준 교훈을 언제나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에 관한 기억을 모아 '만세'란 책을 남기며 후손들이 아픈 옛 식민지 과거 역사를 잊지 말기를 바랐다.

독립운동가 서영해도 이런 하소연을 했다. 3·1운동 뒤 상해로, 다시 프랑스로 무대를 옮겨 임시정부를 대신해 힘들고 외롭지만 미국의 이승만과 쌍벽일 만큼 독보적인 외교 독립운동을 편 그가 1940년 3월 1일 쓴 심정이 그렇다.

'나라를 잃고 왜놈의 총칼 밑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가 30년이 되었다…통일 덕으로 강적을 대할 줄 몰랐던 우리는 3·1운동 이후…당파 싸움으로 원통한 실패를 얼마나 거듭하였더냐!…무슨 당, 무슨 파하고 아직도 당파 싸움을 하고 있는 분이 있으니 참 한심하다…제발 당파 싸움을 고치자!'

일본은 한국을 '영원히, 완전하게' 지배하려 한국을 열등하고 미개한 나라로 낮췄다. 일부러 '당파'의 나라로 한·일 두 나라 사람에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앞의 글을 보면 실제 못난 당파도 더러는 있었던 모양이다. 시대 사정으로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과연 어떤가.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이 끊어지고, 남쪽은 동서로, 보수와 진보로, 또 대구경북과 그 밖으로 나뉜 꼴이다. 이제 나라도 있으니 당과 파로 맘껏 흩어지고 갈려 찢어져 싸워도 좋을 때인 모양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눈앞이다.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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