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 80년대 호황을 누렸던 양복점이 기성복에 밀려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경주시 외동읍 전통시장 내에 있는 '해동라사' 이경락(67) 대표는 50여 년을 한결같이 '몸이 아닌 마음에 맞추는 옷'을 짓고 있다. 이 대표는 "요즘은 맞춤양복보다 옷수선을 하러 오는 손님이 많지만 후회는 없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양복점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방직공에서 양복 장인으로
'해동라사' 안은 빈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각종 재료들로 가득하다. 벽에 걸려 있는 옷감과 손 때 묻은 재봉틀, 다리미, 색색깔의 실꾸러미, 자투리 천까지 예전의 양복점 모습 그대로다. 유리진열장 안엔 멋진 양복 윗도리가 반듯하게 진열돼 있다.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작업대엔 직각자, 곡자, 줄자, 천을 대는 마자, 소매 곡선용 특수제작자 등 10가지가 널브러져 있다. 수납함엔 사탕처럼 형형색색 크고 작은 단추와 실, 지퍼 등이 들어 있다.
막내아들인 이 대표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1966년, 고향을 떠나 대구에 있는 방직공장에 취직했다. 하루 꼬박 12시간 일하면 100원, 한 달을 꽉 채워야 3천원을 받았다. "당시엔 누구나 비슷한 환경이었다. 어디든지 취직을 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늘 눈물이 난다"고 회고했다.
2년 뒤. 막내가 부모 품을 떠나 타향에서 고생하는 것이 가슴 아팠던 아버지는 아들을 불렀다. "방직 대신 양복 일을 배워보면 어떻겠냐"며 제의했다. 그러면서 일류 양복 전문가를 소개해줬다. 외동읍에 있는 해동라사에서 적을 두고 경주시내에 있는 양복 전문가에게 일을 배웠다.
8년 뒤, 1976년 해동라사를 인수했다. "당시 해동라사 대표가 경주시내에 또 하나의 양복점이 있어 그곳에 전념하느라 나에게 물려줬다. 이름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은 양복점, 여성은 양장점에서 옷을 맞췄을 때라 양복점은 잘 됐다. "당시 양복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결혼 예복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거나 소위 잘 나가는 이들이 입는 옷이었다"면서 "동네손님뿐 아니라 단골손님의 주문이 넘쳐 직원을 4명이나 둘 정도였다"고 했다.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이 대표는 "'이 옷 입고 미국에 간다''며 잘 만들어 달라고 한 손님이 있었다. 내가 만든 작품이 멀리 미국까지 가는구나 하는 뿌듯함에 열심히 일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대표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준 사람도 있다고 했다. "양복 외상값 10만원을 받으러 갔다가 되레 볼때기를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1985년까지는 잘 됐다. 그 후에는 맞춤양복이 기성복에 밀려 사양길이다. 시대 유행을 못 좇았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때 교복이 호황을 누렸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이 대표는 요즘 일 년에 10벌 남짓 양복을 만든다. 그 외 주로 바지 길이와 바지통을 수선해 달라고 주문하는 외국인 등이 손님의 대부분이다.
연안초등학교 2회 졸업생인 이 대표는 매년 모교 졸업생 중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복 한벌씩 해준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한번은 초교생과 유치원생 등 60명에게 체육복 한벌 씩 선물했다. "옷을 입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흐뭇합니다."
이 대표는 50여 년 바느질 인생에 대해 "행복했다"고 했다. "즐겁게 일해 힘들지 않았다. 2남 1녀 자식들도 잘 커줬다"며 "배운 게 양복짓는 일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좋은 옷이란?
공장에서 생산하는 접착식 양복에 비해 수제양복은 그 과정이 복잡하다. 디자인과 원단을 고르고 몸의 치수를 잰다. 치수에 따라 종이 위에 재단을 그려 자르고, 그 모양대로 원단 위에 재단선을 그어 옷감을 자른다.
옷감이 울지 않고 몸에 딱 맞도록 심재를 받쳐서 손으로 꿰매는 것이 비접착식 수제양복의 핵심이다. 이때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옷감이 밀리거나 몸이 불편하지 않도록 재단선을 넣거나 천에 여유를 주는 치밀한 계산을 해야 한다. 상의 한 벌에 대략 붙는 부자재는 수십 가지. 수만 번 이상의 바늘땀이 숨어 있다. 과정마다 열처리 테이프를 붙여 변형을 막거나 안감을 붙인다. 양복 옷감을 받쳐주는 심재도 소재별로 다양하다. 심재에 따라 바느질의 방향과 방법도 달라진다. 옷깃에는 끝까지 모양을 유지하도록 한 땀 한 땀 바늘선을 넣어 포인트를 살린다. 속 심재는 변형을 막기 위해 끓는 물에 옷감을 데쳐 일종의 열처리를 거친다. 이 모든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 대표는 "좋은 옷이란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이라고 했다. 양복이 불편한 옷이 된 것은 자신에게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맞춤양복은 세상에 꼭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이라고 강조했다. "몸에다가 옷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입는 사람의 마음에 맞추는 옷이 진짜 좋은 옷"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세월 따라 양복 스타일도 많이 변했다고 했다. "1960년대와 요즘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상체는 몸에 딱 맞는 게 선호됐고, 바지는 지금은 좁은 형태이지만 그땐 나팔바지를 무척 선호했다"고 했다. 코(뒤트임)도 많이 변했다고 했다. "원코, 투코, 무코를 놓고 고심을 많이 합니다. 앞 여밈도 대다수 싱글이지만 트렌치코트 같은 더플 스타일도 그땐 엄청 인기를 끌었는데 지금은 촌스럽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양복은 '유행의 시험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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