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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생일'

영화
영화 '생일'

불면의 밤. 20대에 절망과 불안으로 몇 차례 그런 적이 있지만 성인이 된 후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 3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샌 적이 있었다. 2014년 4월이었다.

세월호. 첫날 오전 침몰과 구조소식이 오락가락했지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저 애들을 못 구할까. 눈에 보이는데, 선창을 깨고 들어가면 되는데. 금방이라도 애들을 구해 나올 것만 같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구조는 없었다. 이튿날도 그랬다. 골든타임 72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못 구했다. 실망이 분노로, 다시 슬픔으로, 그리고 자책감으로 괴로웠다. 지난달 목포 신항에 덩그러니 올라 있는 세월호를 보면서 복받치는 슬픔에 손이 떨렸다. 세월호는 나에게 시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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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세월호 참사를 다룬 첫 상업영화 '생일'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그리고 있다.

사고가 난 지 2년 후인 2016년. 순남(전도연)은 아들 수호를 잃고 딸 예솔과 둘이 산다. 그동안 곁에 없었던 남편 정일(설경구)이 귀국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혼자 큰 슬픔을 겪은 순남은 정일을 반기지 않는다. 문도 열어주지 않고, 며칠 뒤 그에게 이혼서류를 내민다.

순남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사람과의 만남도 꺼린다. 퇴근길에 미수습자와 선체의 인양을 주장하는 거리 서명운동의 메가폰 소리가 듣기 싫어 음악을 켠다. 묘소에서 만난 부모들이 애써 밝은 척하자 "소풍 오셨어요?"라고 매몰차게 쏘아붙인다.

그러나 그녀는 슬픔을 혼자 감내하며 속으로 파고든다. 철이 바뀌면 아들의 옷을 사 오고, 현관 센서등이 켜지면 아들이 온 것 아닌가 화들짝 놀란다. 모임의 대표가 수호의 생일을 준비하려고 하자 "그걸 왜 해요?"라면서 거부한다.

순남의 이런 태도가 더욱 가슴 아리게 한다. 애써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분노를 강요하지 않는다. 남은 가족들의 일상 속에 깊게 녹아져 있는 슬픔을 세밀하게 그려내 보여줄 뿐이다. 애써 담담하게 보내던 순남은 어느 날 밤 꿈에 아들을 만나면서 참았던 울음을 토해낸다.

'생일'은 순남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얼마나 크고 이겨내기 힘든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남편과 딸, 그리고 수호의 친구들을 등장시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공유하게 한다. 오빠에게 집착하는 엄마 때문에 예솔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서운해하는 딸에게 "오빠는 밥도 못 먹는데 반찬 투정을 해?"라고 소리친다. 베트남 공장 사고 때문에 도저히 귀국할 수 없었던 남편 정일도 아내에게는 어쩔 수 없는 가해자가 되고 만다.

순남은 우리 모두가 겪은 트라우마의 상징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의 죽음을 보상금으로 저울질하거나, '유난 떤다'는 주위의 시선, 등록금을 경감해준다는 보도에 "돈 생기면 좋지"라며 세속적인 조소를 보내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항변과도 같다.

모든 죽음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순남은 죽음을 인정할 수도 없고, 슬픔을 나울 수도 없다. 드디어 너 없는 너의 생일이 준비된다. 그리고 30여 분에 걸친 슬픔과의 맞 대면,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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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생일'은 슬픔을 겪어내는 과정을 통해 내상(內傷)을 회복하는 한 가정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감독(이종언)은 봉사활동으로 유가족 곁을 지키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했고, 그 느낌을 영화로 진정성 넘치게 담아 내고 있다. 세월호의 아픔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꿈틀거리며 살아있다. 그래서 영화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토리를 위한 기교나 과장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정직하게 바른 길로만 간다. 관객에게 트라우마를 일깨우며 슬픔을 나누고 함께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영화적으로 아쉬움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순남 역의 전도연은 '밀양'에서 딸을 잃은 엄마의 절절함을 '생일'에서도 내면 연기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아파할 때 마다 객석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미국 9·11 테러 때 불타는 무역센터에서 몸을 던져 사망한 이가 200여명이나 된다. 어느 미국 심리학자의 말로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기대하는 것은 희망이라고 했다. 천사가 나타나 나를 안아 안전하게 땅에 내려놓을 것이라는 바람이라는 것이다.

차오르는 물속에서 그 애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선창 밖에 있는 많은 배들이, 거기에 있는 어른들이 나를 구해줄 것이란 믿음.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아무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계속된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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