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위기대응력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9·11 직후 미국 의회는 정보방첩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에 착수했다. CIA와 FBI는 물론 DIA (국방정보국), NSA(국가안보국) 등 방대한 인력과 예산, 정보 수집력을 자랑하는 여러 정보기관들이 있었음에도 사상 초유의 테러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비판 여론이 빗발치면서다.

2002년 11월 공식 출범한 국토안보부는 그 결과물이다. 국가 긴급사태를 관리하는 연방재난관리청(FEMA) 등 22개 기관을 산하에 재배치했다. 흔히 DHS로 줄여 부르는 국토안보부는 테러나 사이버 보안, 재난 등 국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총괄기구다.

현재 DHS 소속 직원 수만 20만 명이 넘는다. 교통안전청(TSA)과 이민세관단속청(ICE), 이민국(USCIS), 관세국경보호청(CBP)에다 해안경비대와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까지 산하에 두고 있다. 지나친 보안 통제나 조직 비효율성 등 문제점이 없지 않으나 '슈퍼예산'(약 470조원)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전체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초대형 연방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런 국토안보부 골격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를 확대 개편해 2013년에 만들었다. 국가 외교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총괄기구다.

그제 속초·고성지역 산불이 빠르게 번지는데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국회 운영위 업무보고 때문에 발이 묶이자 자유한국당을 향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위기 대응 책임자인 안보실장의 공백에 대한 질책이 나경원 원내대표를 겨눈 것이다. 홍영표·나경원 원내대표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공방을 이어갔지만 여야를 떠나 상황을 오판한 국회의 잘못이 크다.

정의용 안보실장도 문제가 있다. 그동안 국가안보실이 북미 회담 등 외교 안보 쪽에 치중하면서 국가재난사태에 대한 주의력이 크게 떨어진 때문이다. 산불 등 재난은 시시각각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국회 양해를 구해서라도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옳았다. 재난은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는다. 더는 이런 난맥상이 없도록 관례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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