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 산업혁명이 낳은 IT 시대는 우리 일상을 확 바꿔놓았다. 모바일 뱅킹을 비롯해 매장에 무인 계산대가 늘어나고 열차표 예매부터 극장 발권까지 IT 시대에 맞춰가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소외되고 있다. 특히 열차 예매 시스템에서 '디지털 래그'(Digital Lag·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지는 현상)가 생기면서 미리 표를 구매한 젊은이들은 좌석으로, 그렇지 못한 어르신들은 입석으로 가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세상은 점점 스마트해지는데 어르신들의 스마트하지 못한 일상, 불편한 이야기와 대책 등에 대해 알아본다.
◆IT 소외자로 산다는 것
#1. 대구 남구 대명동에 사는 김순자(76) 할머니는 지난 설에 아들이 있는 서울을 가기 위해 기차표 예매를 위해 역에 나와 표를 구매했다. 혹여 표를 구하지 못할까 매번 새벽에 나간다. "요새 기차표를 누가 역까지 와서 사겠냐 만은 나 같은 노인들은 늘 그렇게 표를 구한다"면서 "젊은이들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잘 할 수 있어 표를 산다지만 나는 잘 보이지도 않고 방법도 어려워 매번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이나 스마트폰으로 구매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손사래를 치며 "한 번 해보려 했는데 기능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그만 뒀다"고 말했다.
박순임 할머니(69)는 지난 주말 대전 친구집에 가기 위해 동대구역을 찾았다. 그러나 원하는 시간의 열차는 이미 매진돼 박 할머니는 결국 입석을 선택했다. 그는 "항상 한 시간 정도 일찍 와서 열차표를 사는데, 주말은 종종 표가 없어 가까운 구간은 그냥 서서 간다"고 토로했다. 모바일 앱을 통해 미리 예매를 해봤냐는 질문에 박 할머니는 "휴대폰으로 결제하는 방법을 배우는게 더 어렵고 귀찮아 매번 이렇게 한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2. 최청자(73)할머니 집 거실에는 TV나 셋톱박스, 오디오, 에어컨 등 가전기기는 물론 난방과 가스, 보안 시스템 등 리모컨이 여러 개 뒹굴고 있다. 기기를 작동하려면 먼저 리모컨부터 찾아야 한다. 그러나 리모컨마다 알 수 없는 버튼이 너무 많은 것도 이해가 안 된다. 버튼에 탑재된 기능을 다 익히려면 사용설명서를 펴 놓고 따로 공부를 해야 할 판이다. "괜히 쓰지도 않는 기능에 대해 추가 비용만 지불한 것 같아 억울한 생각이 든다"면서 "드럼세탁기 계기판을 보면 울세탁부터 섬세세탁, 이불세탁, 드라이클리닝 등 여러 기능이 있는 것 같은데 거의 안 쓴다. 세탁과 온도조절, 탈수 정도. 그냥 구식 통돌이 세탁기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3. 이종명(71) 할아버지는 며칠 전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려고 에어컨을 켰는데, 찬 바람도 안 나오고 바람세기도 조절이 안 됐다. 리모컨을 붙잡고 이 버튼 저 버튼 눌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에어컨 산지 1년 남짓 밖에 안 됐는데, 벌써 고장이 난데 대해 화가 났다. 다음 날 수리 기사가 와서 고장이 아니라 리모컨 기능설정이 '냉방' 대신 '제습'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줬다. 이 할아버지는 "간단한 리모컨 조작 하나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종일 슬펐다"고 말했다.
#4. 정해순(70) 할머니는 휴대폰으로 아직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게 어렵다. 보낼 때마다 휴대폰 자판으로 모음과 자음을 조합하는 법을 매번 주위의 젊은 사람들한테 물어본다. 특히, 된소리(ㄲ ㄸ ㅆ ㅃ)나 이중모음(ㅑ ㅕ ㅛ ㅠ ㅒ ㅖ)은 아직도 어렵다. "지인 중엔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문자 메시지는 물론 인터넷도 못쓰는 경우가 많다"며 "그에 비하면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활짝 웃었다.
#5. 김재일(81)할아버지는 집 근처 주거래 은행 지점이 사라져 버스를 20분동안 타고 다른 지점를 찾았다. 모바일 뱅킹으로도 할 수 있는 단순한 업무였지만 김 할아버지는 "휴대전화로 전화만 하지 문자도 잘 안 하는데 은행일까지 어떻게 할 수 있겠나"라며 "수익성을 이유로 점포가 자꾸 없어지니 불편하다"고 말했다.
김한수(72) 할아버지는 "인터넷뱅킹을 이용해 볼 생각도 했지만 컴퓨터를 쓸 줄도 모르고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해야 한다'는 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송금할 때마다 '은행이 노인들의 눈먼 돈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푸념했다.

◆ 전문가 "사회적 배려·정책 필요"
이같은 어르신들의 디지털 소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문맹'이 된 어르신들이 사회와 담쌓는 걸 방치하면 세대 간 갈등은 더 격화될지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그나마 베이비부머(1955~64년생)가 65세 노인에 합류하면 디지털 문맹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어르신들의 정보격차 해소를 사업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보사회의 대표적인 소외계층인 노인들을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국가가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멋지고 빠른 IT'는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친절한 IT'에 힘써야 한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IT 인터페이스가 부족하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인을 소외해서는 안 된다. 기술력이 쉬이 닿지 않는 어르신까지 포용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이 젊은 세대 위주로 맞춰져 있다. 외국의 스마트폰 사용설명서는 어르신 소비자를 위해서 사용 설명서가 크고, 쉽게 정리돼 있다"면서 "모든 연령이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맞춤형 기능이 필요하다. 모듈의 다양화를 통해 노년층의 스마트폰 사용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서노인종합복지관 교육상담팀 이수정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은 최신 기기에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또 익숙하지도 않다. 그래서 활용 가능하도록 반복을 거듭하며 교육시킨다. 하지만 기본적인 것만 사용한다. 혹 잘못해 금전적인 손해가 예상되는 열차 예매나 폰 뱅킹 등은 안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복지사는 이어 "IT 환경이 급속도로 변해가고 업그레이드를 거듭하는 건 불가피한 현실"이라면서도 "어르신과 같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차별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보다 친절한 보완책들을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마련해 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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