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무신정권 100년의 권력자들은 '방'(房)의 정치를 선호했다. 주로 군 수뇌부의 회의기구인 중방(重房)을 중심으로 정사를 펼쳤다. 정중부를 제거하고 권좌에 오른 젊은 무장 경대승은 사병조직인 도방(都房)을 설치했다. 최충헌의 권력을 물려받은 집권자 최우는 정방(政房)이라는 기구를 두고 사저에서 백관의 인사를 처리했다. 방은 이렇게 공식기구가 아닌 독자적인 집정부로 비밀스러운 성격을 지녔다.
온돌 문화에서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에게 '방'의 개념은 특별하다. 방이란 공개적이기보다는 뭔가 저마다의 내밀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다. 집안의 중심이자 안주인의 공간인 안방과 가장의 거처이며 손님을 접대하는 사랑방도 그렇다. 우리는 유난히도 특정한 역할을 하는 공간에 '방'자를 붙이고 그 특유한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방의 속성상 아무래도 그곳은 음성적이거나 부정적인 뉘앙스가 짙은 경우도 적잖았다.
안방술집인 요정이나 룸살롱도 방의 그늘진 분위기를 고스란히 지녔고, 도시 골목 귀퉁이마다 자리하며 서민들의 삶을 밀고 당겨온 복덕방과 그 변종인 떴다방도 어김없이 방의 이름을 달고 있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에서 보듯이 감방은 죄수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요, 쪽방과 옥탑방은 늙고 소외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가녀린 삶의 끈을 이어가는 곳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풍미해온 방 문화는 뭐니 뭐니 해도 '노래방'과 'PC방'일 것이다. 골목마다 건물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던 이 방들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경기 침체에 따른 회식 문화의 위축과 스마트폰 대중화에 따른 모바일 게임 성행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영원한 방은 없는 법이다.
방 문화의 변천은 시대의 변화를 방증한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아파트 생활이 안방과 사랑방을 지워버렸고, 술 문화가 바뀌면서 요정집의 내밀한 정서도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탐욕과 일탈의 욕구는 또 다른 그들만의 방을 만들어낼 것이다. 독재 정권의 폐쇄적인 정치 문화와 당파 정권의 코드 인사 또한 방 문화의 현대적 변주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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