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3회)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가을 운동회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잔잔한 어느 가을날 오후

일광욕을 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 동산에 올랐다.

그곳에서는 전찻길 건너 맞은편에 내가 다니던 경남중학교가 보인다.

마침 그때 그 학교에서는 가을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우레 같은 함성과 북소리 장구 소리와 함께 뛰고 달리는 친구들의 모습들이 선연하게

다가왔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장교가 되겠다는 꿈이 사라진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두 발로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춘기 소년의 가슴 속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신은 나에게 이렇게 가혹한 벌을 주셨을까?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줄 때 그가 이겨내지 못할 고통은 주지 않는다.

그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깨달음이 내 인생을 어떻게 뒤바꾸어 놓을지는 이때는 미처 몰랐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온몸 마비로 인한 욕창으로 네 번의 피부이식수술 후

21개월 만에 결국 내 다리로 걷지도 못한 채 휠체어를 타고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무료입원에 부산대학병원 최장기간 입원 기록을 뒤로 한 채.

◆21 개월만의 귀가

일 년하고도 9개월 간의 병원 생활을 마감하고 돌아온 집은 말 그대로 썰렁했다.

퇴원을 축하하는 팡파르는 고사하고 아버지의 한숨소리만 가득했다.

전혀 난방이 되지 않은 방은 시베리아 벌판이 따로 없었다.

이불을 깔고 누웠지만, 장기간 침대 생활을 한 나에게는 마치 바위 위에 누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기도 불편한 이부자리도 잠시였고 우선 배가 고파도 집 어디에도 먹거리가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의 절망감이 나를 괴롭혔다.

◆성경책과 고구마

방은 온기가 없어 썰렁한데 일어설 수 없다는 자괴감과 절망감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집안에는 물 이외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다니던 막내의 제안에 나는 그만 영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앞집에 사는 아이가 성경책이 필요한데 성경책을 주면 고구마를 한 개 주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입원 중에 간호사 누나가 준 그 성경책을 고구마와 바꿔 먹었다.

이후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이듬해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 신부님께 고해성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신부님께서는 "내가 너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몸과 마음속에는 죄로 그리고 빚으로 남아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식 때 자신에게 약속한 두 아들 결혼 시킨 후 언제인가 진료실 문을 닫은 후 일 년 간 주님이 허락하는 곳에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 자신이다.

추위와 배고픔도 잠시 어떻게든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내 발로 걸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독기를 품게 되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재활의학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병원에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해 혼자서 죽을 힘을 다해 방 안에서 벽을 짚고 걷는 연습을 계속했다.

나의 재활 의지를 한기와 허기도 꺾지는 못했다.

광안리 백사장에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끝에 나는 비록 목발에 의지 했지만 걷기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퇴원 후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나서시던 아버지께서 두고 가신 담배를 가지러 집으로 다시 오셨다.

형도 누나도 학교에 가고 없었고 집에는 나 혼자 있었다.

안방에 있던 담배를 들고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뒤뚱 걸음으로 담배를 들고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아버지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엉켜 강물을 이루고 있었다.

그 때 그 순간의 아버지와의 포옹을 잊을 수 가 없다.

그 때 그 감격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버님 전 상서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란

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는

짙고 짙은 물감인가 봅니다

때로는 달 빛 타고 오시고

때로는 별 빛 타고 오시네요

생전에 지으시던 그 미소

보름달 속에서 보이고

생전에 들려주시던 그 말씀

달 빛 타고 들려 주시네요

보고 싶은 아버지

오늘 밤에는 저와 함께

가로등 환한

꽃길을 함께 걸어요

꿈속에서라도 함께 걸어요

우리

광안리 해변

광안리 바닷가는 그리움 가득한 마음의 고향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바라보며

절망을 삼키며 한숨짓던 고아 소년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끝내 울음 토하던 그 곳

모든 일을 기도하듯 하라는 깨우침 있어

이를 악물고 기듯 걷듯

파도소리만 들리는 깜깜한 시각까지

모래사장에서 자신과 끝없는 싸움을 하며

자살이라는 몹쓸 것을 바다에 던지고

목발 짚고 허허로운 웃음으로

돌아서던 곳

그리움 가득한 마음의 고향

나의 어머니

◆떡 사세요. 떡!

어느 해 여름방학 때 쌍둥이 동생과 나는 아르바이트 아닌 생존투쟁을 하고 있었다.

둘이서 떡 장사를 하는데 까까머리 머슴애 둘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떡 사세요! 떡"을 아무리 외쳐도 떡은 팔리지 않고 따가운 햇볕에 떡에서 쉰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우리가 먹어버리자는 생각과 그래도 본전은 건져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번민하는 사이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더는 지체할 수가 없어서 그 떡판을 들고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누나를 찾아갔다.

차비가 아까워서 두 시간을 걸어서 갔다.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떡판을 들고 나타난 쌍둥이 동생을 본 누나는 울면서 우리들의 뺨을 때렸다.

이미 떡은 상해서 버려야 하는 지경인데 지체장애인 동생이 그것도 걸어서 거기까지 온 것이 떡이 상한 것보다 누나 속이 더 상했던 것이다.

" 정 안 팔리면 그냥 먹어버리지 그랬냐! 미련들 하기는."

그랬다.

정말로 미련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육십하고도 아홉인 지금도 나는 여전히 미련하다는 것이다.

하늘나라로 먼저 소풍 가버린 쌍둥이 아우가 너무나 그리워지는 밤이다.

하늘나라도 소한인 오늘 밤은 엄청 추울 텐데...

아우야!

미안하다. 내가 미련해서.

(4월23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 4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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