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영리 유전자 검사 (DTC 유전자 검사)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영국의 유전학자이자 우생학(優生學)의 창시자다. 그는 인간의 '유전적 자질'을 향상시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평등한 인간을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나누고 '차이'를 '차별'했던 '우생학'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오명을 남기고 사라졌다.

'캔세이웨어'는 골턴이 쓴 소설 <어디에도 없는 곳>에 나오는 우생학이 실현된 이상향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곳에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키, 몸무게는 물론이고 미학적, 문학적 재능까지 측정하는 '유전적 소질'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소설 속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의료기관이 아닌 기관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의뢰를 받아 유전자 검사를 수행하는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DTC, direct to consumer, 일명 영리 유전자 검사) 항목을 확대했다. 그동안은 '탈모' '피부 탄력' 등 건강, 미용 부문의 12개 유전자 검사만 허용되었는데, 이제 '당뇨병' '위암' 등 13개 질병에까지 확대된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 '영리 유전자 검사'의 확대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무시되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유전자 검사 권고 항목에는 '아침형 인간' '비만' '와인 선호도' 등도 있다. 임상적 의미가 불분명한 이러한 유전자 검사를 위한 '호객행위'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영리 유전자 검사 확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학적 타당성'과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질병은 수많은 유전자의 상호작용과 환경요인의 영향을 받아 발병하기에 단순한 유전자 검사로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런 검사는 국민들의 불안감만 부추겨 불필요한 치료 및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 걱정이다. 유전자 검사에서는 '아는 게 병'이 될 수 있다.

검사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따라서 서민들은 유전자 검사에서 소외될 수 있고, 이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보험회사는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할 가능성이 있고, 유전 질환이 있으면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다. 기업들 역시 직원 채용 기준에 유전자 검사를 넣어 취업 기회의 차별을 둘 수 있다.

소설 <어디에도 없는 곳>의 이야기처럼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유전자의 질'을 먼저 파악하는 '유전자 궁합'의 시대가 곧 도래할지 모른다. 더 큰 걱정은 유전자가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로 나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새로운 '유전자 우생학'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국가의 경제도 기업의 이익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이제부터라도 유전자 검사 항목을 엄격히 제한하고 '유전 상담'을 통해 신중하게 유전자 검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영리 유전자 검사'의 항목 확대는 '과학적 근거'와 '안전성'을 기준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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