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갓바위 불상에 관한 단상(斷想)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팔공산 주 능선 동편 끝자락 관봉(冠峰, 853m) 정상부에는 갓바위 부처로 불리는 보물 제431호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

2015년 국립공원연구원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00여 평도 채 되지 않는 관봉 정상부의 갓바위 불상을 보기 위해 연간 약 250만 명(경산 쪽에서 오르는 사람 178만 명, 대구 쪽에서 오르는 사람 72만 명)이 방문한다는 공식 통계가 있다.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의 탐방객 수를 보여주고 있어 세계문화유산급에 해당하는 중요 문화재다.

평면적 신체 탄력성이 약해 8세기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게 불교미술사적 해석이다. 본 불상은 7세기 후반과 8세기 중반에 각각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아미타여래좌상)과 국보 제24호이자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석가여래불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선본사 사적기'를 발굴하여 그 내용을 불교신문에 게재한 기사(2013년 5월 15일)를 보면 이러한 추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략) 이 불상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승려들만 불상을 보고 발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남녀들도 깊은 신심을 일으켰다. 이것은 의현(義玄) 화상의 공(功)이고 불일(佛日)이 멀리 비추어준 덕(德)이라 할 것이다.-도광 원년(1821, 순조 21년) 하안거 해제일에 쓰다. 이때의 주지 범해(梵海)가 분향하고 삼가 쓰다-"

의현 대사는 화랑의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 법사의 제자로 전해져 오던 인물이다. '선본사 사적기'에서 의현 대사의 실명이 사실로 밝혀져 갓바위 불상 조성 시기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금까지는 불상이 9세기에 조성되었고 불상 머리 위에 얹혀져 있는 갓 모양의 평평한 돌은 후대인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선본사 사적기'의 기록과 최근에 밝혀진 갓 모양의 바위에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보상화 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기존의 판단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상 머리에 얹혀져 있는 갓모양의 돌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라면, 불상은 통일신라 이전 시기에 조성돼야 논리적으로 맞다. 부연하면, 갓바위 불상은 7세기경에 조성되었고, 갓 모양의 넓적한 돌은 8세기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 불상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의 영향을 받아 갓바위 불상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갓바위 불상의 영향을 받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석굴암 본존불이 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상의 왼손에 작은 약합이 있어 약사여래불로 인식되어 왔으나 실은 약합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이며, 갓을 쓰고 있어 미륵불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대좌(臺座)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갓바위 불상은 돌 하나조차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불교적 자연 존중 사상이 오롯이 녹아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바라건대,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갓바위 불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이 함께 공유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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