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에 '조현병 포비아' 재확산, "안전망 강화 필요" 목소리 높아

의료계 "조현병은 치료 가능한 정신질환, 방치하거나 격리했다간 문제 더 키워"

18일 오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안모(42)씨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창원지법 진주지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안모(42)씨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창원지법 진주지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화 흉기 난동사건'이 난 경남 진주시 모 아파트 화단 바닥에 18일 희생자가 흘린 핏자국과 주인을 잃은 신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최근 발생한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을 계기로 '조현병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강력범죄를 일으킨 다수의 범죄자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를 사회에서 내몰 것이 아니라 치료 체계 등 안전망을 우선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력범죄에 따라붙는 꼬리표 '조현병'

지난 17일 새벽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사건처럼 최근 1년 새 대구에서도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크고 작은 범죄가 잇따랐다.

조현병은 망상이나 환각, 정서적 둔감 등 증상을 보이는 만성 정신질환이다. 조현병 환자가 피해망상이 심화하거나 사회적으로 오래 고립되는 경우 이유 없는 분노가 쌓여 폭력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약물을 정기 복용하면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으나, 오랜 기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증세 재발이 이어질수록 회복이 어렵다.

지난 2월 11일 A(47) 씨가 대구 북구 자신의 집에서 흉기로 70대 노부모를 수차례 찔러 모두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A씨 역시 현장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부상을 입은 채였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10여 년 전부터 조현병 치료를 받았고 최근 증세가 심해져 입원치료를 앞뒀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에는 조현병을 앓고 있던 C(24) 씨가 대구 달서구 이곡동 한 거리에서 10대 행인의 뒷머리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찔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2월 24일에는 여성 행인을 잇달아 성추행한 D(35) 씨가 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D씨가 만성 조현병을 앓아 심신미약인 점을 고려해 엄벌 대신 보호관찰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수강 등을 명했다.

◆'격리수용' 등 조현병 공포감 확산에 "사회적 안전망 강화해야"

일련의 사건·사고 탓에 시민들 사이에선 조현병 환자를 격리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민 E(27) 씨는 "진주 사건을 보며 주변에 조현병 환자가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이 앞선다. 성폭력 전과범들처럼 조현병 환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장애 범죄자의 재범률이 유독 높은 점도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신장애범죄자'로 분류된 이들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재범률은 64.2~66.3%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범죄자 재범률 46.7~48.9%보다 15%p(포인트)가량 높은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신장애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며 치료 강화 등 사회적 안전망 강화가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정신장애연대 관계자는 "조현병은 조기 치료하면 증상 완화와 회복이 가능한 데다, 무조건 폭력적 성향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면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희철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많은 조현병 범죄자는 가족의 치료 권유를 거부하거나 스스로 치료를 피했다가 병을 키우고 망상·환청에 시달려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며 "환자 본인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외국처럼 경찰·소방당국이 사법적으로 환자를 병원 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