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4회)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그리운 아우에게

아우야

오늘따라 하늘은 더 푸르고

바람은 더 세차게 불어댄다

네가 잠든 그 곳은 시방 눈발도 날린다지

입춘도 지났건만 창밖의 바람은 고추보다 맵다

10분 늦게 나왔지만 엄마 뱃속에서는

지가 형이었다고 우기던 아우

먼저 태어난 아이가 동생이 되는 나라도 있다고 엄마한테 진짜로 형이 나인지 너인지 물어보자고 우기던 아우

10분 늦게 태어난 것이 그렇게도 억울해

20년 먼저 떠나버린 거야?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 싶은 아우야

서로가 서로를 보며 닮았다며 웃던 아우야

그리움이 짙디짙으면 바람타고 구름타고

돌아오기도 하는가 보다

오늘 새벽 거울 안에서 이제 내가 형이다

내가 먼저 갔으니까 내가 형님이지라며

버티고 서 있을 아우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진하고 진한 이 그리움을 어찌 전하나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우리 인연의 색깔은 어떤 색이었을까

▶어린 과외 선생

오리처럼 뒤뚱 걸음이지만 혼자 걷기를 시작하자 이제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해야겠다는 당연한 욕심이 발동했다.

우선 필요한 것이 등록금 마련이었기에 초등학교 학생들을 모아 과외선생을 했다.

우리 집은 장소가 협소해 학생 집에서 수업을 했다.

두 군데 과외선생을 하며 독학을 하게 되었는데 4년 만에 들여다본 중학교 교과서는 전혀 딴판이었고 수학에 나오는 집합이라는 것은 그 의미조차 몰라 한글사전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정작 과외를 받아야할 학생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그러나 내가 과외를 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죽기 살기로 공부하던 중 심한 감기몸살로 이틀을

과외수업을 못해주게 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나에게 세 명의 꼬마들이 물어물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손에 과일이 든 비닐봉지 하나씩을 들고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 선생님! ''

하면서 들어서는 아이들은 흠뻑 젖어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제자들에게 어떤 존재이며 스승이 제자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하는지.

새삼 중2 담임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때 늦은 고등학교 입학

독학하느라고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터지자 아버지는 ''그렇게 애쓰지 말고 쉽게 입학할 수 있는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닭이나 키우면서 너하고 싶은 문학공부를 하면 어떻겠니?''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반드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해야했다.

결국 지방 명문고라는 청주고등학교에 당당히 합격하고 때늦은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또한 녹녹치 않았다.

동급생보다 나이가 네 살이나 많은데다 순수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 근처에 오는

친구들이 없었다.

동급생이 아니라 거의 아저씨 대접을 받았다.

4년간의 투병생활로 인해 아주 가까운 친구 몇 명 이외는 나와 교류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외톨이 신세였다.

그래서 학교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 시를 쓰며 학우들과 어울렸다.

시화전도 하고 시낭송회도 하면서 가까이하는 선후배들이 한 명 한 명 늘어갔다.

2학년 봄 어느 날 같은 성당에 다니는 동급생 여섯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자기들은 단순히 동급생이 아니고 의형제들인데 나이가 같아 가끔씩 마찰이 있을

때는 갈등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큰형으로 모시고자 왔다는 것이다.

이틀간의 고민 끝에 승낙을 하고 '세븐브라더스'의 맏이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각자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모두들 성실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고 다섯은 서울에서 한명은 청주에서 나는 울산에서 살고 있지만

오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의형제의 연이 이어지고 있고 지금도 매달 한 번씩 저녁

모임을 갖고 있다.

나는 개원의사라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참석하지 못하지만 전화로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친형제 못지않은 정든 탑을 쌓아가고 있다.

고2 첫 모임 때 함께 외쳤던 ''포에버 세븐브라더스''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고

이승을 떠날 때 까지는 만남이 이어질 것이다.

아니 저승에 가서도 의형제는 계속 만날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

3학년 졸업 무렵 대학에 입시원서를

제출하러 갔었는데 어떤 사복 입은 학생이 '' 정곤이 형!''하고 나를 불렀다. 내가 그에게 한 대답은 '' ''너는 누구니?'' 였다.

한반에서 일 년을 지내고도 그가 같은 반 친구라는 사실을 몰랐다.

2년을 거의 매일같이 성당에 드나들면서 학생회 월간 소식지를 직접 먹지에 쓰고

등사해서 만들었으니 언제 대학입시준비를 제대로 했겠는가?

결국 졸업반이 되어서야 학업에 매달렸으니 같은 반 친구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졸업한 것이다.

아마 그 친구가 함께 의과대학에 다니지 않았다면 지금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때늦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진로에의 고민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면서 진학문제로 고심하게 되었는데 내 꿈인 가톨릭 신부와

아버지의 꿈인 의사가 결국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

아버지는 결혼도 못하는 신부가 되는 것에 반대하셨다.

당시에는 아버지는 신자가 아니었다.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의 허락과 누나 형의 지원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반대하셨다.

성당 성모상을 탑돌이 하듯이 돌고 돌면서 묵주기도를 드렸다.

기도에 대한 답이 왔다.

''일단 의사가 되어라. 의사가 되고 나서 신학교로 간다고 하면 그때는 아버지도 지금처럼 강경하게 반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의과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었다.

▶의과대학 입학

청주에서 멀지도 않고 국립대학이라 등록금도 비교적 적게 드는 충남대학교 의예과로 원서를 접수하고 나서 보니 신학교를 갈 요령으로 거의 매일 하교하면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입시공부는 게을리 할 수밖에.

의예과에 합격 하려면 현재 성적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

또 며칠을 죽기 살기로 책과 씨름을 한 결과 다행히 일차는 합격을 했다.

(4월30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 5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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