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떨림과 울림'(2018), 김상욱 저 , (도서출판) 동아시아. 문학적 과학美의 발견

정종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우주는 떨림이다. 인간은 울림이다.'

마치 시집에 나올 법한 문장이지만 놀랍게도 과학책에 나온 것이다. '온도를 가진 모든 물체는 빛을 낸다. 인간도 빛을 내고 있다.' 아름답다. 평범한 과학적 설명이 극도로 아름다운 문학적 언술로 변화한다. 과학과 문학. 어찌 보면 가장 거리가 먼 두 분야이다.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은 바로 문학으로서 과학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과학이 과연 문학일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고 알고 있는 과학은 문학적 재미를 조금도 느낄 수 없다. '만유인력, 남중고도'처럼 일상에는 접하기 힘들고 단지 외우기만 해야 하는 개념,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장대하게 따분한 이론의 꾸러미다. 그나마 '빛은 직진한다.'와 같은 설명은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가 경험하니까. 그런데 전자와 원자를 설명하는 양자 역학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과학적 개념인 유체 이탈을 직접 경험하기도 한다.

저자의 동기도 여기서 출발한다.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과학을 일상으로 끌어오고자 한 것. 저자가 택한 주요 수단은 바로 '일상적 언어'다. 그가 과학적 개념을 쉽게 설명한 수단으로 일상적 언어를 선택했는지, 아니면 그것으로 문학적 파장을 의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 언어를 과학으로 끌어오면서 과학의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방정식
방정식

원자의 본질을 설명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이론적 언어로 설명한 방식이다. 이론적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볼 때에는 그야말로 외계인의 언어이자 쓸모없는 언술이다. 책은 외계인의 언어를 아름다운 일상적 문장으로 바꾼다. '원자의 본질은 물결과 같은 파동이다.' 간극이 느껴지는가.

정종윤 작
정종윤 작 '울림과 떨림'

'떨림과 울림'의 매력은 바로 이런 이론적 언어와 일상적 언어의 간극에 있다. 과학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일상적 언어가 '은유'처럼 느껴진다. 간극을 좁히고 여백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상상력을 발동한다. '인간도 빛을 내고 있다.'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파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만 생각하지 않는다. '빛'이라는 단어를 보며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상상하게 된다. 과학의 언어가 문학적 효과를 드러낸다.

우리는 과학을 이런 식으로 음미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접하고 배운 과학은 오직 이해해야만 하고 아름답지 않은 지루한 일거리에 불과했다. '떨림과 울림'은 과학의 다른 면모, 일찍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이 응시하는 지점은 과학 이론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의 아름다운 파장이자 효과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과학을 바라보는 것은 올바른 것인가. 혹시 얄팍한 감각으로 과학을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질문에 대답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공룡에 열광하던 아이시절을 회고해보면 그때만큼 과학책을 열심히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과학은 매력적인 상상의 덩어리였다. 이 아름답고 흥미로운 과학의 모습을 음미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정종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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