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은주의 잉여현실] 지금 당신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하고 자퇴할 위기에 있는 학생들과 5회기 사이코드라마 집단치료를 진행했다. 마지막 시간에 "지금 기분이 어때?" 하고 물었더니 주인공을 한 수인(가명, 고1)이가 되물었다. "선생님 기분이 뭐예요?" 하고. 순간 나는 당황스러웠다. 수인이는 사물과 자연과 잘 교감하며 영민함이 있는 아이였는데, '기분'이라는 말을 모르다니!

지난 회기마다 기분을 물었을 때 "잘 모르겠어요" "그저 그래요" 했었다. 신체 움직임이 적고, 긴 체육복을 입고 담요를 들고 있고, 다른 친구와의 접촉을 꺼리는 것으로 봐서, 솔직한 기분을 말하고 싶지 않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건 오해였다. 그보다는 기분이라는 말이 뭔지 몰랐던 것이다.

기분은 나를 둘러싼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직관적으로 일어나는 내 몸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좋고 나쁜 기운이다. 심리학에서는 감정, 정서, 느낌이라는 말을 쓴다. 기분을 잘 알아차리는 것은 의식이 깨어 있음과 관련이 있다. 수인이는 살아오면서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해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기분이나 감정을 강하게 느끼기도 하고, 서로를 통해서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관계 맺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정서가 풍부해지고 자기 기분을 잘 알아차리고 표현을 잘하게 된다. 관계 맺기를 잘한다는 것은 처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신으로 타인과 만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진실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수만큼 나를 비춰볼 거울이 많다는 것이다. 또 내가 속을 드러내는 깊이만큼 배움도 깊어진다. 수인이가 편안한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과 동물이었다. 수인이의 거울은 자연과 동물인 셈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자신의 기분에 대해 또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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