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을 맞이해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지 못했던 영화관에 갔다. 지난달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기생충'을 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팬은 아니지만, 작품들이 다 재미있어서 그의 흥행작들은 대부분 본 것 같다.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 영화 평론가나 영화 전문가도 아니기에 그의 영화를 예술과 문화 측면에서 비평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봉준호라는 영화감독이 가진 사회에 대한 문제 인식과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풀어가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빛을 발한 결과가 황금종려상 수상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3년 송강호,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턴이 출연한 '설국열차'는 필자가 기생충을 보고 난 후 오버랩되는 영화였다. 기상이변으로 모든 것이 얼어붙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가 스토리 전개의 공간이다. 열차는 계속해서 달려야만 열차 안 사람들이 살 수 있다. 안에는 바퀴벌레로 만든 양갱을 먹으면서 추위와 배고픔에 살아가는 꼬리칸의 사람들, 기차 안에서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상류층의 사람들과 그리고 선두칸의 절대권력자까지 다양한 계층들이 있다.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공간은 달리는 기차였지만, 그것은 하나의 상징일 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는 그 나름 치밀한 준비 끝에 폭동을 일으켜 기차의 엔진실을 점령하고 선두칸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자신의 폭동이 절대권력자와 꼬리칸 리더의 은밀한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열차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꼬리칸에서 데려간 아이가 열차 부품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생충에서는 두 개의 공간이 스토리 전개의 핵심적 모티브가 된다. 유명한 건축가가 만든 호화 저택과 정작 살고 있던 사람들도 몰랐던 호화 저택의 은밀한 지하실. 주인공 가족이 살고 있는 낡고 오래된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집. 호화 저택의 푸른 잔디밭과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커다란 통유리창은 부유층의 삶을 상징하고, 작은 부엌 겸 거실에 유일하게 난 조그만 창이 유일한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지만 항상 취객이 그 앞에서 소변을 보는 반지하집은 빈곤층의 삶을 상징한다. 반지하집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기택 가족은 호화 저택에 기생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반지하 삶의 냄새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된다. 더 이상 스토리를 언급하는 것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 스포가 되는 것 같아 생략하기로 한다.
과거와 같은 신분제 계급은 아니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람들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계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계층 간의 갈등으로 인해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설국열차에서 절대통치자의 하수인은 자신을 생포한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신발을 머리에 쓰지 않지. 신발은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애초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어. 나는 앞칸, 너는 꼬리칸. 그러니 네 자리를 지켜." 상류층, 중산층, 차상위층, 빈곤층,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린 일정한 계층으로 분류된다. 기생충에서도 지상과 지하라는 공간은 계층의 알레고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계층 간의 불평등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기생충 두 영화는 '복지'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 간의 불평등과 갈등의 산물이 바로 복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부터 내 머릿속에 계속 다음 대사가 맴돈다. "기택: 부자인데 착해, 부잣집 애인데 구김살이 없어/ 기택 아내: 부자라서 착한 것이고 부잣집 애들이라 구김살이 없는 거야, 나도 이런 데서 살면 착하게 살 수 있어."
우리는 부(富)와 빈(貧)이 인성의 좋고 나쁨마저도 결정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복지는 인성을 만들어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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