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은 도움을 드린 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일상의 말들이 오갔다. 이윽고 핸드폰을 통해 나직하게 전해지는 말이 발끝에서부터 소름을 만들며 온몸으로 번졌다. "선생님, 저 죽고 싶어요." 아, 속을 몇 번이나 훑어낸 말이 그분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냈을까? "어머니, 그러시면 안 돼요. 아이 몫까지 살아내셔야 해요." 그분의 상처가 전이돼 내 속까지 훑어내는 듯했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어머니는 한 정치인의 막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내내 찌른다며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남들에게는 오래된 일들이 자신에게는 어제 일처럼 선명하고 하루도 제대로 잠들 수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봄은 유독 슬픔이 많은 계절이다. 마치 보릿고개처럼 넘어서기가 힘들다. 제주 4·3 사건, 4·16 세월호 참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지나고 시작되는 6월에는 급기야 전쟁의 상처까지 드러난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필체가 선명하게 박혀버린 6·25전쟁. 가족이 흩어지고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민족이 민족의 몸에 총구를 들이대는 비극은 분단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기록에 의하면 6·25전쟁 희생자는 남북한 합쳐 137만4천195명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1개월 2일 동안 인구의 5분의 1이 희생됐다. 지난 25일 6·25전쟁 69주년에도 희생자 가족들은 묻어뒀던 슬픔으로 목멨을 것이다. 먼 이국의 전쟁터에서 젊음을 던진 유엔군도, 적의 입장으로 내려와 총알받이가 된 중공군도,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남쪽 처자와 가정을 꾸릴 수도 있었을 북한군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포화 속에서 산화한 우리의 젊은 군인들도,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형, 동생들도 행복한 삶의 권리를 빼앗긴 전쟁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간혹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 아프다. 누구의 슬픔이든 슬픔은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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