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몽실 언니 (권정생/창비/ 2017)

울고 싶거든 '몽실 언니'를 만나라.

'몽실 언니'를 읽고 권정생 작가의 집을 찾아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이내 조탑리의 논과 밭들이 보인다. 저기 어디쯤에 작가의 집이 있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좁은 길을 따라 골목 안을 한참 들어갔다. '몽실 언니'가 살던 집이 자꾸 오버랩 되는 가운데 맞이한 작가의 집은 초록색 양철지붕, 작은 마당, 무성한 잡초들, 집이라고 부르기가 편치 않을 정도다. 이렇게 낡고 허름하고, 작은 방에서 그 곱고 맑은 글들을 써냈다는 사실이 좀체 믿기질 않고, 가슴이 싸하게 아려왔다.

늘 자신에게 엄격하고 검소하게 사셨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실제 살았던 집에 와 보니 검소한 정도가 아니라, '청빈(淸貧)'이라는 단어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청빈은 '맑은 가난',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한 것을 가리킨다. 작가 권정생의 가난은 그야말로 맑은 가난이었다. 작가 권정생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될 것 같다. 교회 종지기로 일하면서 오로지,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쓰면서 산 작가의 삶은 가난으로 해서 더 맑은 지혜를 준다.

이금주 작
이금주 작 '권정생의 동화나라'

권정생은 일본에서 중일전쟁이 시작된 해에 태어나 태평양 전쟁까지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경험하며 자랐다. 아버지는 도쿄의 청소부로 리어카에 버린 책을 가져오면, 읽고 싶은 그림책을 골라 읽고 즐거워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4년 만에 6.25전쟁을 맞게 된다. 청년시절부터 병마와 싸우면서 혼자 아픔과 외로움을 헤쳐 나갔다.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인형극도 보여주고, 동화도 들려주다가 자신의 작품을 들려주기 위해서 동화를 쓰기 시작, 첫 작품으로 '강아지 똥'을 내 놓았다.

'몽실언니'는 교회 관련 잡지에 연재되었다가 1984년 '창비'에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널리 알려졌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268쪽)는 문장이 '몽실 언니'의 삶을 가정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지독하게 가난했고, 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난다. 몽실은 새아버지와 살게 되면서 새아버지의 폭력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다시 친아버지에게 돌아와 새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동생을 낳고 새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혼자서 동생들을 돌보며 고단하고 힘든 인생길을 걸어간다. 부모로부터 사랑받기보다는 부모가 크나큰 짐이 되는 삶을 살았다. 두 어머니의 동생들을 다 끌어안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길에서, 원망보다 용서와 희망을 보여 준다.

작가는 자신의 동화를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권정생의 삶과 문학' 121쪽)고 말한 바 있다. '몽실 언니'처럼 힘들고 거친 삶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벅찬 것이다. 그렇지만 희망이란 단어가 거울로 비추어질 때는 따스한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몽실 언니'를 만나야 한다.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자신을 끌어안고 울고 있는 세상의 '몽실 언니'들에게 조용히 들려주고 싶다. 사는 게 힘들어 울고 싶거든 '몽실 언니'를 만나라, 그대 눈물을, 그대를 닮은 몽실 언니가 닦아줄 것이다. 나직이 '몽실 언니!'를 부르며 그의 가슴을 파고들어라.

이금주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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