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여곡절 겪은 비운의 신라왕경 복원사업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7일 오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신라왕경특별법을 의결했다. 사진은 이날 신라왕경특별법을 두고 회의 중인 모습. 김석기 의원실 제공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7일 오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신라왕경특별법을 의결했다. 사진은 이날 신라왕경특별법을 두고 회의 중인 모습. 김석기 의원실 제공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이하 신라왕경특별법)이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와 18일 문체위 전체회의를 잇따라 통과하면서 '신라왕경 복원사업'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70년대 경주관광종합개발사업으로 시작된 신라왕경 복원사업은 수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비운의 사업'이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경주를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경주관광종합개발사업을 시작했다. 1972년부터 10년간 사적지와 사적지 주변 시가지를 정비하고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숙박단지를 포함, 관광기반시설을 조성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당시 정부가 사업에 필요한 예산으로 책정한 금액은 225억 7천100만원에 달했다.

정부는 재원 마련을 위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차관 2천394만 달러를 요청했다. IBRD는 1973년 4월 평가조사단을 파견해 현지를 둘러본 뒤 같은 해 11월 차관 지원을 결정했다. 금액은 정부가 요청한 것보다 많은 2천500만 달러였다.

당시 IBRD는 차관집행기구 설치와 민간투자 유치 등을 요구했고, 그렇게 설립된 기관이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의 전신인 경주관광개발공사다.

이 사업은 수많은 매장문화재를 발굴하는 성과를 냈다.

대표적 사례가 신라고분 155호이다. 길이가 120m에 달하는 98호분(황남대총) 발굴에 자신이 없었던 문화재관리국은 인접한 155호분을 연습삼아 파보기로 하고 1973년 4월 발굴을 시작했다.

한때 박 전 대통령이 98호분 발굴에 빨리 나설 것을 지시하면서 155호분 발굴이 위기를 맞았으나 1973년 7, 8월 금관(국보 제188호)과 천마도(국보 제207호)가 연이어 발굴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 이 고분이 바로 천마총이다.

수많은 값진 유물 발굴이라는 성과를 낸 이 사업은 2단계 사업에 들어가기 직전인 1979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며 바로 중단되는 운명을 맞았다.

김병찬 경북문화관광공사 홍보전산팀장은 "박 대통령 서거 다음날인 10월 27일 2단계 사업 보고가 예정돼 있어 공사 직원 2, 3명이 서울에 숙소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대통령 서거를 알리는 라디오방송을 듣고 망연자실했다는 얘기를 선배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신라왕경 복원사업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12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방공약사업으로 '신라왕궁 및 황룡사 복원사업'을 채택한 이후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입한다는 사업계획안이 나왔고,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사업 추진과정이 주기별로 청와대에 보고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사업은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이런 비운의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라왕경 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신라왕경 복원사업이 더 이상 정치적 풍파를 맞지 않고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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