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감성이 풍부해야 한다. 타협과 조정이 정치의 중요한 업무 영역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배려하지 않으면서 자기 의견만 주장하고 자기의 뜻만 관철시키고자 하면 거의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난관에 직면한다.
요즘 사람들은 감성정치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향수를 자극하며 눈물을 짜내는 쇼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서 어루만져 주고 꿰뚫고 알아서 대신 일을 잘 해 달라고 주문한다.
국민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달라는 시대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어울려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디가 아픈지 가려운지 서로 긁어가면서 다독이며 동시대를 공유하기를 요구한다. 즉 정치 군단에서도 사람의 향기가 나기를 바란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국민 정서, 지역 정서와 동떨어지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우리 국민이 감성정치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읽고 국민의 감정만 자극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소박하고 정직하며 일상의 소소하지만 진실한 마음을 헤아리고 가슴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현혹적인 것으로 대중의 인기만 사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연예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가 하면 비전과 새로운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 옛날이여'라며 구태의연한 옛 노래만 부르는 정치인들도 있다. 인기만 생각하는 정치인, 옛 노래만 부르는 정치인은 국민과 나라에 해롭다.
우스갯소리로 '정치인은 욕을 많이 먹어서 가장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사랑하고 칭찬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도 문제지만 존경받고 사랑받는 정치인상을 정립하지 못한 정치문화도 큰 몫을 한다.
오랜만에 만난 어느 원로 시인의 말이 걸작이다. 그는 이렇게 건강하고 젊은 비결이 뭐냐는 후배의 질문에 "정치인을 만나지 않고 정치 뉴스를 보지 않고 정치와 멀어져 살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건강하면서 젊어진다"는 말이다. 헉, 그렇다고 그는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 '자연인이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도회지 한복판에서 현실을 유지하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우리 정치와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요즘 정치 한다는 사람들이 '진실하지 않고 의리도 없고 사랑도 없고, 더더욱 국민은 안중에 없다'고 작심하고 비판했다.
오래전 시조 한 편이 떠올랐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하여가(이방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단심가(정몽주)
한 사람은 얽힘의 논리로 화해와 협력을 희망하고, 또 한 사람은 죽음도 불사하지만 막말을 쓰지 않고 굳은 의지와 충심을 노래했으니 막말을 쏟아내는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본받았으면 한다. 타협과 조정은 따뜻한 가슴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감성을 지니지 않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아무리 뛰어나고 명석한 지략가이고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그의 생명은 짧을 것이다. 권모술수로 요행을 바라면서 진실하지 못하고 윽박지르는 패거리 정치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진실한 마음을 시(詩)처럼 주고받는 느긋하고 온화한 정치문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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