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끝을 만진다/이영란

이영란 씨
이영란 씨

촉감은 모든 것들의

끝을 만진다

눈 부릅뜨고 끝을 수습하는 방식에는

마지막 결기가 뭉쳐있다

인식된 지문처럼 자유로운

손 끝.

나뭇가지들의 관절은 셀 수 없지만

그 섬세한 손끝으로

흩어진 구름을 깁는 것을 본다

이음새도 보이지 않는 구름의 휘장 사이로

길게 수직으로 떨어지던 실의 줄기들을 본다

방울을 튀기면 끝으로 만진다

더듬고 구부리고 토닥거린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형의 손가락들이 많다는 뜻이다

꽃은 해묵은 등걸을 버리고

새로 돋는 가지의 선단부에서 핀다

활강하는 현을 운지법으로 바느질하는

사람의 타오르는 손끝,

열 개의 경혈이 문제를 읽고 해석한다.

세상의 끝, 그 촉감들이

내 손가락으로 들어온다

그때마다 마감하는 날짜들을 센다

세고 남은 날짜들은 곰곰이 녹여먹거나

기침으로 흘려보낸다

나뭇가지들이 동그랗게 공 굴리는 열매들

손끝에서 모아지는 소실점들의 끝을 만지면

어긋난 약속이거나 놓친 순간들이 느껴진다

어느 손끝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

끝이어서 따갑고 시리지만

따끔, 그 끝에서 꽃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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