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또 '실패한 대통령'인가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아무리 능력 없고 내세울 게 없는 아버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를 무시하거나 욕하면 자식은 참을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지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들으면 국민은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욕설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멸시로 여기기 때문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북한이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미사일 두 발을 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온갖 인신모독을 퍼부었다. "삶은 소 대가리도 웃을 일"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북쪽 총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 등 대한민국 대통령을 마구 난도질했다.

1960, 70년대처럼 남북한이 대치 상태 또는 체제 경쟁을 하거나 박근혜·이명박 정부처럼 북한을 압박했다면 우리 대통령을 향한 북한의 조롱·모욕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주선하고 대북 제재 완화 등 유화 노선을 걸으며 북한과 김정은을 향해 지극정성으로 공을 들였다. 오죽하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비아냥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고마워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대고 문 대통령을 향해 저열한 언사를 퍼붓고 있다.

애초 목표한 북한 핵 폐기는 물 건너간 반면 남한을 표적으로 한 북한의 도발이 갈수록 가중하는 것을 보면서 문 대통령의 집권 2년 4개월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대북 문제는 문 대통령의 국정 제1과제였다. 그렇게도 목을 맨 대북 문제가 좌초한 것처럼 국정 전 분야에서 '실패의 증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성과는커녕 어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 대다수가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 언급한 '외톨이'는 야당이 아닌 이 나라가 처한 안보·외교 상황에 딱 들어맞는 단어다. 강대국 중 우리 편을 들어줄 나라가 하나도 없다. 미국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고 한미연합훈련에서 '동맹'이 빠지는 등 한·미동맹은 와해 상태다. 일본과는 단교(斷交)까지 거론되고 중국·러시아는 안보 도발을 일삼고 있다. 열강의 각축 속에 나라를 잃은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

'먹고사는 문제'마저 낙제점이다. 경제성장률과 고용지표는 최악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고 주가지수는 문 대통령 취임 때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등 현실을 도외시한 고집불통 정책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탈원전으로 공공기관들과 기업들은 부실투성이로 전락했고 세계 최고인 원전산업 생태계는 붕괴하고 있다. "경제가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뿐이다.

고고학자 콜린 렌프류와 사회학자 사무엘 아이젠스타트는 붕괴하는 국가의 공통점을 이렇게 집약했다. 집권층 내부의 균열과 투쟁, 관료들의 부패와 문제 해결 능력 부족, 근시안적 정책으로 말미암은 악영향, 과중한 세금 부담과 즉흥적인 땜질 정책 난무, 경제 악화 및 군사력 약화 등을 꼽았다. 이들 항목에 오늘의 한국을 대입하면 이 나라가 붕괴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대전환하지 않고 기존 행태를 답습한다면 실패의 증거는 더 많이 쌓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민은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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