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한다. 지명 때 최우선 고려 사항은 '코드' 즉 이념적 성향이다. 사법부를 최대한 대통령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게 대통령의 의중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지명으로 1953년 대법원장이 된 얼 워런이다.
아이젠하워는 그를 지명하면서 "오늘날 연방대법원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검사 출신인 데다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3번이나 역임한 정통 '공화당 맨'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믿는 도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워런은 대법원장이 된 후 아이젠하워의 '발등'을 찍었다. 피의자를 체포할 때 묵비권과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告知)해야 한다는 '미란다 원칙', 돈 없는 형사 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기드온 판결', 공립학교에서의 흑백분리는 위헌이라는 '브라운 판결' 등 진보적인 판결을 잇달아 내렸다. 아이젠하워는 퇴임 후 "그를 지명한 것은 인생 최악의 실수였다"고 후회했는데 그럴 만했다.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임명한 해리 블랙먼 대법관도 그랬다. '절친'인 당시 워런 버거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지명을 받은 그는 '무난한 보수파'로 평가받았다. 이런 평가대로 임기 초반에는 역시 보수파였던 버거 대법원장과 의견 일치 비율이 87.5%에 이를 정도로 '궁합'을 잘 맞췄다.
그러나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블랙먼은 지명자의 희망과 반대로 갔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이 여성의 낙태권 제한은 위헌이라는 1973년 판결이다. 이를 보면서 닉슨도 아이젠하워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사문서 위조혐의로 6일 밤 기소했다. 공소시효(7년) 만료 시한이 이날 밤 12시임을 감안해도 '전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제대로 찍혔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도 치라고 했으니. 지금쯤 문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와 같은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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