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서원을 찾아가는 즐거움

독서의 계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서원 찾아가보는 것도...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한다. 옛 선비들이 풍광이 좋은 곳에서 책을 옆에 끼고 독서하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하고 싶기도 한 계절이다. 경치도 뛰어나면서 독서가 딱 어울리는 곳으로 서원을 추천하고 싶다. 서원은 선현을 추모하고, 후진 교육을 위해 세운 기관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립 교육기관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당과 강당 앞마당의 좌우에는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두었다. 서원의 제일 높은 언덕에는 배향 인물을 모신 사당을 만들었는데, 대개 존덕사(尊德祠), 숭덕사(崇德祠), 상덕사(尙德祠) 등의 이름을 붙였다. 서원의 정문에는 시원한 2층 누각을 배치하기도 했는데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가 대표적이다.

지난 6월 30일 좋은 소식이 들려 왔다. 안동의 도산과 병산, 영주 소수, 대구 도동, 경주 옥산 등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것이다. 서원의 세계유산 지정으로 우리나라는 종묘와 창덕궁, 조선왕릉,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등 총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2018년 한국의 산사 11곳 지정에 이어, 서원 9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한국의 불교와 유교 유산은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까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산들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서원은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고려 말 원나라에 가서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안향을 배향한 서원을 세우고, 이름을 백운동서원이라 한 것에서 시작한다. 중국의 주희가 백록동서원을 세운 뜻을 계승한 것이었다.

명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백운동서원에 서적, 토지, 노비 등을 지원받고 편액(扁額)을 하사받았다. 사액서원이 되면서 그 명칭도 소수(紹修)서원으로 바꾸었다. 선현의 뜻을 잘 계승하고 닦아나가겠다는 뜻이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9곳의 서원 중 6곳이 영남 지역에 분포한 것도 주목된다. 조선시대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사림파 학자들이 배출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후학들을 양성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1610년에는 공자를 모신 성균관 문묘(文廟)에 함께 배향하는 영예를 지닌 오현(五賢)을 선정했는데,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이 그 주인공이다.

그중 영남을 기반으로 한 4명의 학자를 배향한 서원이 모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김굉필을 배향한 도동서원, 정여창을 배향한 남계서원,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 이황을 배향한 도산서원이다.

도산서원에서는 이황의 생전 자취가 잘 남아 있는 완락재(琓樂齋), 암서헌(巖棲軒), 정우당(淨友塘), 몽천(蒙泉) 등을 만나볼 수 있고, 병산서원의 2층 누각인 만대루에서는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산과 낙동강의 풍경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려볼 수 있다.

호남을 대표하는 사림파 학자 김인후를 배향한 장성의 필암서원에서는 인종이 세자 시절 김인후에게 보낸 묵죽(墨竹) 그림 판각을 보관하고 있는 경장각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충청도 지역의 대표 서원 돈암서원에서는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건물인 응도당(凝道堂)과 함께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등 충청도 지역 유림들의 성장과 활동을 만나볼 수 있다.

서원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 당쟁의 온상이라는 이유로 영조 때와 흥선대원군 집권기 때 대규모로 폐출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그 정신과 유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서원이 위치한 곳은 주변의 자연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서원에 배치된 강당, 기숙사, 사당, 누각 등은 전통시대 교육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을날에 학문적 향기가 불어오는 서원을 찾아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정수들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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