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박정희 사진의 숙청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사진까지도 숙청된다.' 과거 공산 국가에서 숙청된 사람은 모든 기록물에서 사진까지도 삭제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후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숙청된 장칭(江靑) 등 4인방은 좋은 예다. 1976년 9월 18일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마오의 추도식에 4인방을 포함한 20여 명의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참석했다. 이 장면은 중국 관영 신문에 실렸다. 그러나 4인방이 실각한 뒤 11월 이후 공개된 사진에는 4인방이 지워지고 그들이 서 있던 자리는 비어 있다. '포토샵'도 하지 않은 것이다. 새 권력은 4인방이 말 그대로 지워졌음을 천명한 것이다.

4인방도 그렇게 했다. 대약진운동이 시작된 1958년 베이징 시장이었던 펑전(彭眞)이 그 희생자다. 1958년 그가 마오와 함께 삽질을 하는 사진이 있는데 마오가 사망한 1976년 공개된 사진에는 그가 사라졌다. 펑은 4인방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1966년 숙청됐다.

볼셰비키는 그 선구자다. 1920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연단에서 폴란드로 출정하는 병사들에게 연설하는 레닌의 사진이 있다. 원본에는 레닌 곁에서 연설 차례를 기다리는 트로츠키와 카메네프가 있었는데 스탈린 집권 후에는 그들이 지워져 있다. 두 사람은 레닌 사후 권력을 놓고 스탈린과 경쟁하다 패배해 카메네프는 처형됐고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됐다.

스탈린의 충견으로 내무인민위원회(NKVD) 수장으로 있으면서 스탈린을 위해 68만여 명의 '반동분자'를 처형한 '피 칠갑을 한 난쟁이'(Bloody Dwarf, 키가 151㎝였다) 니콜라이 예조프도 같은 길을 갔다. 그가 스탈린과 함께 볼가강 운하를 따라 산책하는 사진이 있는데 숙청된 뒤에는 그가 지워져 있다.

구미시가 구미공단 설립 50주년을 맞아 제작한 홍보 영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련 내용을 모조리 빼버렸다. 구미공단을 설계하고 만든 주인공을 지워버린 것이다. 시는 제작업체의 실수라고 하지만 두 차례의 시사회까지 한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구미시장은 여당 소속으로 '박정희 지우기'를 추진해왔다. 제작업체의 '실수'는 그 일환으로 보인다. 과거 공산국가에서나 있었던 '사진 숙청'이 민주국가에서 버젓이 재연되는 개탄스러운 시대다.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대구·광주 지역에서는 군 공항 이전 사업을 국가 주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광주 군민간공항이 무안국제공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의 4지구 재건축 시공사가 동신건설로 확정되면서 9년여 만에 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조합은 17일 대의원회를 통해 ...
방송인 박나래의 전 남자친구 A씨가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해 경찰에 제출한 혐의로 고발되었으며, 경찰은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이와 함께 경...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