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외제차 탄 공공임대주택 거주자, 영세 서민 집 빼앗는 꼴

정부가 저소득층과 탈북자·사할린 교포 등 영세 주거 취약층의 거주 안정을 위해 1993년부터 2006년까지 보급한 전국의 '50년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10가구 중 1가구꼴로 2대 이상의 차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과 재산에 상관없이 무주택에 청약통장만으로 입주 자격을 준 탓에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상대적 고소득자가 혜택을 누리는 등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자유한국당 김상훈 국회의원이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주택관리공단의 국감자료를 분석한 결과, 그동안 공급된 50년 공공임대주택 2만5천742가구의 11.5%(3천38가구)가 2대 이상 차를 가졌는데, 외제차는 188대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구미의 한 공공임대주택은 전체의 30.9%(234가구)가 외제차 7대를 포함해 2대 이상의 차를 보유,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구 역시 전체의 18.6%(478가구)가 2대 넘는 차를 가졌고, 외제차만 14대였다. 구미·대구 사례를 보면 평균 3~5가구당 1가구는 2대 이상 차를 가진 셈이다.

이는 주거 취약층을 위한다는 당초 제도의 허점으로 실제 혜택을 누려야 할 영세 무주택 취약층이 되레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자 구멍난 제도를 고치지 않고 방치한 결과다. 영구임대주택처럼 2년 단위 계약 방식이 아니라, 한 번 입주하면 50년을 살 수 있는 데다 처음부터 가구 월소득, 총자산, 자동차 가액 등 구체적인 소득과 재산 등의 기준을 갖추지 않고 무주택에 청약통장만으로 가능하도록 한 때문이다. 악용될 허점을 안고 시작하고도 문제점을 제대로 점검조차 않았으니 그럴 만하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주택이 절실한 실질 거주자를 위해 당국은 하루빨리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제대로 된 입주 자격 기준부터 정비하고 전체 가구 조사를 통해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일이 급선무이다. 무엇보다도 보호가 필요한 영세 무주택 취약층의 주거 공간을 뺏어 2대 이상에 고가 외제차까지 굴리는 상대적 고소득자에게 줄 만큼 나라 행정을 엉터리로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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