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발암 약' 바꿔준다면 끝인가?

이석수 선임기자
이석수 선임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한국 출장소는 아니지 않은가. 국민 생명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외국 기관의 뒤꽁무니만 쫓는 후속 조치를 할 것인가?"

최근 진행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은 식약처에 대해 질타를 쏟아냈다.

식약처는 지난달 위장약 성분 중 하나인 '라니티딘'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며 원료 의약품 269개 품목에 대해 판매 중지 및 회수 조치를 내렸다. 앞서 미국과 유럽에서 라니티딘 관련 발암물질 검출 보도가 나왔지만, 식약처는 1차 검사한 결과 발암물질 검출은 없었다고 '발 빠르게' 발표했다. 그러다 열흘 만에 국내 유통 제품 수거 검사 후 스스로의 입장을 뒤집어 버렸다.

지난해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탄 사태'도 주말에 발암물질 검출을 서둘러 발표했다가 월요일부터 의료기관 마비를 불렀다. 당시 해당 약품 리스트가 바뀌어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적극적, 신속한 대응을 해왔다고 자화자찬을 해 빈축을 사왔다.

이러한 식약처의 '위기 대처 부재'는 인보사, 인공 유방 등의 관련 사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국감에서 제약·바이오업체들이 식약처의 늑장으로 국내 임상 연구를 포기하고, 인보사 투여 환자에 대한 어떠한 검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을 다루는 식약처의 안일함과 무책임성은 내부 고발로도 터져나왔다. 한 임상심사위원은 식약처장을 포함한 공무원 12명을 직무 유기 혐의로 검찰에 직접 고발했다.

발사르탄에 이어 라니티딘 처방약 회수 조치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약품 안전 관리의 총체적 위기를 보여준 '참사'라고 비판했다. 식약처가 허가해 준 약을 믿고 처방한 의사 역시 발암 행정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현장에서 쏟아지는 혼란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고, 환자들의 불만과 오해를 감당하는 것도 의사들 몫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의협은 전국의 회원들에게 "지난해 발사르탄 사태처럼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상황을 안내하지 않아도 된다"고 긴급 메시지를 돌렸다.

또 "이미 복용한 라니티딘 위장약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환자가 불안해하거나 안전성에 대해 문의하면 기존 처방에 라니티딘 포함 여부를 확인하고 추가 복용에 대해 설명하면 된다"고 대응 지침까지 하달했다.

의료 정책에 대해 정부와 각을 세우는 의협이 전가의 보도처럼 '국민 안전'을 외치면서, 굳이 '환자들에게 연락하지 마라'고 의사들에게 긴급히 연락할 필요가 있었을까.

식약처의 라니티딘 판매 중지 발표 당시 해당 성분 약품을 처방받아 복용 중인 환자는 144만3천여 명. 처방 의료기관은 2만4천300여 곳, 조제 약국은 1만9천900여 곳이었다.

물론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양식 있는 의료인들은 의협 지시를 '거부'하고, 자신이 처방한 환자에게 약을 바꿔 가라고 알렸을 것이다.

뒷북 행정을 일삼는 식약처도 한심하지만, 의협 역시 환자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의사들이 겪을 불편함만 먼저 헤아리고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 아니었을까. 당초 의협, 약사회 등은 재처방, 재조제에 따른 본인부담금 면제에 반대했다고 한다.

국민 대부분은 라니티딘이 뭔지 모른다. 연락조차 못 받고 병원에서 처방해 준 발암 위장약을 다 먹었다면? 동네 병원에 대한 의료 소비자의 불신은 이렇게 깊어진다. 한 번이라도 다녀간 환자에게 병원 이전 소식은 잘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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