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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사람의 향기(하)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암이었던지 여자는 병원에 가서는 석 달이 못 되어 죽었다고 한다. 길지 않았지만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참으로 반듯하게 잘 키워 놓았다. 심성들이 착하고 인사성도 밝다고 소문이 나 있다. 형제는 둘 다 좋은 일자리를 얻고 참한 색시를 만나 일찍 가정을 이뤘다. 청년백수의 시대에 돋보이는 경쟁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는 저들 어머니의 엄한 교육 덕택이라고 볼 수가 있다. 물론 일손이 딸려서겠지만, 초등학생도 되기 전부터 새벽 일찍 깨워 고추를 따러 데리고 다니는 등 자립심을 길러줘 근면 성실이 몸에 배였던 것이다.

다소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행동도 신체적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었을까싶다. 여자는 사시(斜視)였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비교적 많이 배웠고, 눈만 아니면 미인 편에 속했던 그녀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만난 시답잖은 남편 때문에 속이 상했을 것이다. 또, 어려서부터 편견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 상처를 입었으리라. 그 때문에 폐쇄적인 성격이 되었는지 몰라도 마을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지극히 제한된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따지고 보면 가여운 여인이었다. 남편을 잃고 홀몸으로 농사를 지으며 어린 아이들을 키우던 세월도 짧지가 않다. 마을 사람들과는 교류가 없었으니 당연히 도와주는 이도 없었다. 남자를 만난 것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였다. 몸도 마음도 참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잘 자란 자식들이 그녀가 떠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 것을 보면 그만하면 성공적인 삶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어렵다는 자식농사를 제대로 지어놨으니 말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둘이던가.

자식들은 어머니 사후에도 홀로 남은 의붓아버지를 잘 모신다고 한다. 여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도 "아버지 잘 모셔라!"였다고 한다. 신산한 세월을 바람처럼 떠돌다가 여자의 집에 둥지를 틀었지만 다시 짝을 잃고 빈집을 지키고 있는 남자는 그래도 자주 찾아오는 아들 며느리들이 있어 외롭지가 않다. 직접 지은 농산물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등 친부자간 못지않은 정을 나눈다. 그 풍경이 얼마나 살가운지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할 지경이라고 한다.

꼭 피를 나누어야만 가족이던가. 비록 남남으로 만났지만 사랑과 보은을 통해 유대감을 다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사람의 향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라는 말이 있다.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는 뜻이다. 꽃이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사람만 하겠는가! 온갖 살벌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모처럼 듣는 훈훈한 이야기에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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