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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당신의 관심을 조금만 이웃 가까이

지난 7월 영남대의료원 응급센터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왼쪽이 송영숙 부지부장. 매일신문 DB.
지난 7월 영남대의료원 응급센터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왼쪽이 송영숙 부지부장. 매일신문 DB.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겨울이 훌쩍 다가오면서 괜스레 마음이 더 후달린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 중 가장 마음의 빚이 큰 사건 중 하나가 영남대의료원 사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뭐 하나 도움된 것이 없다. 그저 날이 궂기만 하면 내내 하늘만 쳐다봤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이들이 별 탈 없이 안전하기만을 기원했다.

여성 해고노동자 2명의 고공 농성은 한창 더위가 심해지는 7월 1일 시작됐다. 이들은 장마와 이글거리는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고, 불어닥치는 태풍을 맨몸으로 그대로 받아냈다. 이후 낙엽이 다 떨어지고 영하의 찬바람이 불어닥친 지금까지도 고공 농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2명의 고공 농성자 중 1명이 건강 문제로 중도에 내려오면서 1명만 홀로 남아 외롭고 위험천만한 나날을 버티고 있다. 오늘로 벌써 144일째다. 이대로라면 해를 넘길 기세다.

영남대의료원 사태에 유달리 미안함이 쌓이는 이유는 목숨 내놓고 투쟁하는데도 영 시민들의 관심을 얻지 못해 언론의 탓도 있는 것 같아서다. 지역 언론조차 지속적인 조명을 이어가진 못했다.

반면 이들에게 미안함이 커질수록 모든 것을 함몰시키는 정치 이슈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든 것이 서울 중앙 집중 일색인 우리나라지만, 이 중에서도 유독 정치 분야는 거대 담론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현상이 빈발하는 곳이다.

얼마 전 모든 정국을 휩쓸어 버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그랬고, 현재 진행 중인 검찰 개혁을 둘러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논란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뉴스만 틀면 친정권과 반정권의 세력 다툼이 쏟아지고 또 쏟아진다.

사람들은 모여 앉았다 하면 나랏님과 정권 이야기다.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기 바쁘고, 정치와 국정 운영,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전문가적인 식견을 과시한다. 그 와중에 편 가르기도 곧잘 벌어진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정작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미시 정치'는 그 존재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정작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일들에 관심을 쏟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경악할 만한 사건이 벌어져 봤자 잠시의 가십으로 지날 뿐이다.

'공정함'을 논하는 시대지만 의외로 내 바로 주변에 누가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는지는 관심 밖이다. 내가 사는 동네 의원들은 제대로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직접 혜택을 받는 청년정책은 지역 실정에 맞는지, 재개발로 인해 내쫓긴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갔는지를 논하기에 이미 우리의 스케일은 너무 크다. 워낙 시대적 담론에 익숙해지는 사회 분위기가 되다 보니 거창한 세상 이야기를 하면 통찰력과 사고가 깊은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현실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를 꺼내 들면 시시껄렁하게 여기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세상사는 복잡다단하다. 거대 패러다임이 전환되면 세상이 확 바뀔 것 같지만 수많은 일들은 거미줄처럼 미묘하게 얽혀 있다. 더욱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이념 논리에 매몰돼서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절대 '한 방'에 해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시 정치, 생활 정치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제발 중앙으로만, 특히 정치 편향된 당신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내 가까운 곳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큰 정치판 바꾸기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작은 불공정함, 불편, 비리, 악습 등을 바로잡아 나가는 노력이 병행돼야 진정으로 좀 더 나아진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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