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사람들하고 부대끼고 피곤했어도 편안하게 쉴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집이란 거친 세상에서 가족을 보호해주는 안온한 덮개다. 집이란 무릎나온 트레이닝복처럼 헐렁하고 편안해야 한다. 집은 물리적인 재료와 기술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짓고 시간이 완성하는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것이다. 이 책은 홍익대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 노은주·임형남 부부가 그동안 만났던, 좋아하는, 함께 지었던 집에 대한 이야기자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이야기다.

◆가족을 품는 집
전남 구례에 지은 집은 부부와 아이와 외할머니, 즉 3대가 사는 전통적인 가족을 위한 집이다. 약간 경사가 있는 땅의 조건을 이용한 수직으로 반 층씩 물린 4층의 집으로 만들었다. 가장 현관과 가깝고 땅과 가까운 곳에 할머니의 공간을 만들고 반 층 올라간 집의 중간에 가족의 공통 공간인 거실과 식당과 주방을 만들었다. 반 층 위에 부부의 방과 아이의 방이 있고 다시 반층 오르면 남편의 공간이자 취미 공간이 있다.
강원도 원주에 지은 집은 부부의 취향이 확연하게 달라 단순하고 약간은 서양식 아름다움을 추구한 남편채와 한식 공간을 지향하는 부인채를 따로 만들었다. 부부가 한 대지 안의 다른 채에서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가족간의 일정한 거리와 각자의 영역 확보가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경북 포항에 지은 집은 아버지가 썼던 창고를 고쳐서 만든 집이다. 198㎡ 중 3분의 1인 66㎡를 복층으로 만들어 1층은 주방과 거실로, 2층은 가족실과 욕실과 침실로 구성했다. 이들에게는 집이 '의미 있는 공간'이라는 게 중요하다. 이들처럼 집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한 번 생각해보고, 집을 내 몸에 맞추고, 나의 현재에 맞추면 어떨까.

◆사람을 품은 집
경남 하동의 십리벚꽃길이 내려다보이는 '적이재'는 지리산 한가운데에 산과 산이 마주 대하고 있는 사이로 섬진강으로 들어가는 물길이 유창하게 흐르는 중간에 있다. '고요히 머무르며 우러른다'는 의미의 적이재는 어린 시절 살아았던 시골 농촌마을의 마루가 있고, 텃밭과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떠올리게 한다. 집주인은 오랫동안 도시의 거의 같은 형식의 아파트에서 별다르게 신경쓰는 일 없이 편안하게 살아왔는데,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후 어린 시절 살았던 전형적인 시골의 집을 그리게 되었다. 집의 외관은 우리나라 민가 혹은 한옥을 모티브로 하고, 가장 일반적인 경골목구조 형식을 택했다.
산을 좋아하는 부부가 집을 짓고 싶다고 찾아왔다. 땅은 소백산이 뻗어내린 중간에 있는 곳이다. 앞과 뒤로 산이 겹겹이 둘러쳐 있었고, 그 안에 화려한 꽃술처럼 솟아 있는 땅이다. 드넓은 바둑판에 두 점의 바둑돌을 앉힌 것처럼 집을 놓았다. 그 모습은 시골집처럼 편안했고 산이 집을 꼭 안아주어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높고도 깊은 산속에 욕심을 버리고 들어가 살고 싶은 주인을 닮은 집이었다.

◆자연을 품은 집
충남 아산시 동정리에 있는 '선의 집'은 수평으로 길게 뻗어나간 집과 원래부터 자리잡고 있던 수직의 소나무가 어우러지며 대지에 처음 그렸던 선의 의지를 확인시켜준다. 이곳은 염치저수지를 빙 둘러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산이 적당한 거리로 물러서 있으며 저수지의 수량도 아주 넉넉하다. 그리고 남쪽은 훤하게 열려 있다. 땅의 가운데서 보면 막힘없이 물이 쭉 펼쳐지고, 시야에서 물이 끝나는 부분 양쪽으로 산이 보이고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집을 도로와 물과 평형하고 길게 펼치고, 부엌과 거실과 가족의 침실, 주인이 머물며 음악을 들을 별채를 차례로 연결했다.
강원도 속초 도문동에 있는 집은 원래 있던 집의 모양과 닮고, 집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과도 비슷한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집터에 있던 옛집은 약 100년 전 설악산 울산바위 근처 암자에 있던 요사채를 옮겨와 지은 것이라 한다. 집은 두 채로 나누어 모두 남향으로 햇빛이 잘 드는 집이 되도록 하고, 일자로 길게 방들과 부엌을 배치한 안채와 거실 겸 음악실, 다락을 겸한 사랑채를 배치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땅에 세 채의 집이 산봉우리처럼 땅위에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이야기를 품은 집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2016년 수상자로 선정된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가장 필수적인 설비를 넣은 집을 절반 규모로 짓고 나머지는 주민들이 살면서 확장할 수 있도록 구상하고 설계했다. 그는 '반쪽짜리 집'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낡은 집을 고치고 늘리는 요령을 터득한 주민들이 열심히 일한다면 나머지 반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또 그는 공공건축 프로젝트 그룹인 '엘레멘탈'을 이끌며 2010년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당한 칠레의 도시 재건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칠레 이키케의 킨타 몬로이에 30년 된 낡은 슬럼가의 100여 가구를 재개발하면서 약 5,016㎡의 부지에 가구당 7,500달러라는 저예산으로 건축면적 약 33㎡의 살 만한 집을 제공했다. 그는 정부가 주도했다가 실패한 다른 사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도시외곽으로 밀려나지 않고 거주지를 지키면서 중산층 삶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2004년 입주 후 2년여 만에 집의 가치는 2만달러 수준으로 상승했다. 284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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