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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숨은 이야기 <22> 자유를 향하여

의젠 들라크루와작
의젠 들라크루와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의젠 들라크루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캔버스에 유화, 260 x 325cm, 1830, 루브르박물관

2012년에 개봉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서 결의에 찬 민중들의 합창,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나오는 장면은 우리를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를, 누가 다시 노예가 되길 원하겠는가..." 19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화가 의젠 들라크루와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레미제라블'(1862)을 쓰게 되었다. 특히 그림 속 자유의 여신 바로 옆, 양손에 권총을 든 어린 소년은 위고의 소설에서 시민혁명군들에게 길 안내를 하는 '가브로쉬'라는 인물로 탄생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 대학생들이 즐겨 쓰던 베레모를 쓴 소년은 불평등과 부당함에 반기를 들고 고결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청년을 상징한다. 들라크루와의 이 기념비적인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서사 소설 '레미제라블' 역시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쟁점을 낭만주의 이념에 녹여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을 담아냈다.

들라크루와(1798~1863)는 프랑스 낭만주의 화풍을 선도한 작가답게 때로는 주관적인 격정에 넘치기도 했고, 때로는 사회적 모순을 규탄하는 서사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절대왕정의 부당한 억압을 벗어나 자유와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민중의 염원을 녹여낸 작품이다. 어린아이들까지 합세한 시민들의 처절한 함성이 열혈 제국주의자였던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시 화가들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거의 유일한 고객인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애국심으로 뭉친 민중의 항거가 들라크루와의 회화적 상상력에 불을 지핀 것이다.

프랑스대혁명(1789)이 일어난 직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제1조)로 시작하는 인권선언문이 공표되었으나 그것이 현실에 안착하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대혁명 이전의 왕정, 요컨대 '구체제'(Ancien Régime) 신봉자였던 국왕 샤를 10세는 1830년 7월 25일, 입헌정치를 거부하며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칙령을 내린다. 시민들은 7월 27, 28. 29일 사흘에 걸쳐 파리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다시 봉기한다. 희생자들을 냈으나 알제리 원정을 떠난 군대 덕분에 단 삼 일만에 승리를 거두고 샤를 10세를 퇴위시킨 이 혁명을 '3일의 영광'(Trois Glorieuses)이라고도 부르는데, 바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배경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제목으로 우리말 번역이 되었지만, 들라크루와는 그림의 중앙에 격정적이고 생기 넘치는 젊은 여인을 인간의 영원한 갈망의 대상인 자유(Liberté)의 알레고리로 배치했다. 등장인물 중 유일한 여인인 '자유'는 여신이 아니라 민중의 딸로서 격랑을 막아주듯이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다. '자유'는 대혁명 당시에 민중들이 머리에 썼던 '프리지안'(Phrygian) 모자를 쓰고 시민군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자유'가 높이 치켜든 삼색기를 정점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근위대들의 시체를 피하며 전진하는 시민군들이 거대한 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이 그림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자유'의 겨드랑이털이 보이는 것이 수사학자(rhetorician)들의 눈에는 매우 천박하게 비쳤다. '자유'가 당당히 드러낸 풍만한 가슴은 에로틱한 리얼리즘인 동시에 민중의 승리를 예고하는 장치이다. 구석기 시대의 작은 나체 여인상에서부터 근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풍요와 다산, 보호를 표상하는 지모신(地母神)은 늘 풍만한 가슴의 여인으로 나타났다.

들라크루와는 동시대성과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강조하기 위해 '자유'의 왼손에 당시에 제작된 모델의 소총을 들렸고, 성난 민중들 뒤로 뿌연 화염 속에서 희미하게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게 했다.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의 청・백・홍 색상은 이 작품의 라이트모티프로 화면 곳곳에서 보인다.

민중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프랑스 공화국과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개개인의 고귀한 자유를 지키기 위한 혁명 이념을 구현하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수없이 차용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그룹인 '일어서, 프랑스'의 로고로 차용되었고, 2009년 '인류 축제' 포스터에서는 인종차별 문제를 빗대기 위해 흑인 여성이 붉은 깃발과 전자기타를 들고 가슴을 가린 모습으로 나왔다. 영국 유명 밴드인 콜드플레이도 'Viva la Vida' 앨범에서 이 그림의 이미지를 차용하였다. 이 작품은 촛불시위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2016년 11월에서 12월에 걸쳐 국가적 부패와 부당함에 맞서 광화문 일대를 밝힌 평화적인 촛불시위 또한 평범한 시민들이 이룬 위대한 혁명이었다.

박소영 (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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