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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隱惡揚善(은악양선) 허물은 숨기고 선행은 드러내기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요 임금과 순 임금이 다스린 요순(堯舜) 시대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태평성대였다. '중용'(中庸)에는 "순 임금은 크게 지혜로운 사람이다. 묻기를 좋아하고 사소한 말이라도 잘 살펴 은악양선했다"(舜其大知也歟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는 구절이 있다. 상대방의 허물은 숨겨 주고(隱惡) 선행은 드러내는(揚善) 것으로 백성을 다스려 태평성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은악양선은 덕치의 요체인 것이다. 당(唐)나라의 정치가 한유(韓愈)는 사대부들이 서로 헐뜯기를 일삼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글인 '원훼'(原毁)에서 순 임금과 같은 점은 좇고, 순 임금과 같지 않는 것은 멀리해야(就其如舜者 去其不如舜者) 정치가 안정되고 백성들의 다투는 마음이 없어진다(政平而民無爭心)고 했다. 정치가들의 은악양선이 정치를 안정시켜 백성을 편하게 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명재상 황희(黃喜)의 일화도 있다. 하루는 소 두 마리를 몰고 밭을 가는 농부를 보고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하오"라고 물었다. 농부가 황희의 귀에 대고 "누렁소가 더 잘 합니다"고 했다. 황희가 농부에게 "왜 귓속말로 하오?"라고 하자 농부는 "말 못하는 짐승도 욕하고 흉을 보면 기분을 상하게 됩니다"고 했다. 황희는 다시는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不言長短)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하려 하자 황희는 반대했고, 남원으로 유배되었다. 양녕대군을 대신해 즉위한 세종은 자신을 반대했던 황희를 다시 불러들여 24년이나 삼정승으로 삼았다. 정치에는 소신과 원칙을 지키면서도 배려와 관용으로 인간관계에서는 두루 원만했기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정치에 네 탓 공방이 난무한다. 어린이 안전에 관련한 법마저 외면하고 서로 네 탓이라 헐뜯고 있다. 그래 놓고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한다. 정치가 상대의 약점을 물어뜯는 양악(揚惡)이라 해도 금도는 지켜야 백성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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