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동포를 외면한 죄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독일 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돈으로 사버린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 전까지 서독에서 동독으로 흘러간 돈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 규모다. 통일될 때까지 40년간 무역 이외에 서독 정부가 동독에 지급한 공적 보조금과 서독 주민이 동독의 가족에게 보낸 돈과 현물 등 사적 보조금은 모두 750억∼1천억마르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얄타에서 베를린까지' 윌리엄 스마이저)

여기에는 '프라이카우프'(Freikauf)에 쓴 34억6천400만마르크도 포함된다. 프라이카우프는 '자유를 산다'는 의미로, 돈을 주고 동독 내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오는 프로젝트이다. 1962년 독일개신교연합회가 옥수수, 석탄 등 트럭 3대분의 현물을 몸값으로 주고 동독에 수감된 성직자 150명을 서독으로 데려온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에 서독 정부도 1963년 동독의 '매수'에 나서 현금 32만마르크를 주고 정치범 8명과 서독에 부모가 있는 어린이 20명을 서독으로 데려왔다. 이렇게 시작한 프라이카우프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까지 동독 정치범 33만755명과 그 가족 25만여 명을 서독으로 데려왔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서독에서는 우파인 기독교민주연합과 좌파인 사회민주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6명의 총리가 나왔지만 아무도 이를 중단하지 않았다. 좌우를 막론하고 곤경에 처한 동포를 구한다는 따뜻한 동포애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좌파 정부는 이런 동포애가 없다. 오히려 북한 눈치를 살피느라 탈북민의 곤경을 외면한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모두 그렇다. 지난달 한국으로 오려던 탈북민 14명이 베트남에서 체포돼 중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북한 인권단체가 정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기다리라'고만 했을 뿐이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나자빠진다.

지난 4월에도 똑같았다. 한국으로 오려던 탈북민 3명이 베트남에서 체포됐을 때 외교부가 이들이 한국인이라는 전화 한 통만 했으면 이들은 중국으로 추방되지 않았다. 북한 인권단체가 이들을 체포한 베트남 부대 지휘관의 전화번호까지 전달했지만 외교부는 꼼짝도 않았다. 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 죄가 참으로 무겁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